여자는 왜 모래 속에 갇혀 사는 걸까. 여자도 언젠가는 모래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탈출을 시도했을 거다. 여자도 처음부터 마을 사람들과 한패였던 건 아닐 거다. 지금 남자가 그런 것처럼. 모래는 두 사람을 가두었다. 여자와 남자, 먼저 갇힌 사람과 나중에 갇힌 사람, 먼저 받아들인 사람과 나중에야 받아들일 사람, 벗어나길 포기한 사람과 벗어날 거라 착각하는 사람.
여자가 치료를 받고 돌아오면 남자는 모래 구덩이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전남편처럼 여자가 죽고 나면 ‘모래의 남자’가 되어 모래 구덩이 속에서 여자가 하던, 모래 퍼 올리는 일을 계속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또 다른 여자가 마을에 들어오면 그녀가 다시 마을 사람들에 의해 모래 구덩이에 갇히게 되지 않을까. 그녀도 처음에는 모래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이미 그런 삶을 받아들인 남자의 태도를 조금씩 받아들일 거다. 엄마도 방 변호사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에 의해 48평 아파트에 갇히게 됐다. 방 변호사도 ‘마을 사람들’에 의해 엄마보다 먼저 48평에 갇히게 됐을 거다. 이제 두 사람은 나를 48평에 가두려 한다.
나는 ‘어쩐지’ 도망칠 수 있을 거 같다.
--- pp.44~45
내가 누군가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누군가를 무시하고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무시하거나 무시당하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게 “세상의 질서”란다. 엄마가 외할아버지의 ‘도돌이표 유전자’를 물려받았듯 나도 엄마의 아이큐를 물려받은 게 바로 세상의 질서다. 현대사회에서 헌법은 중세의 바이블과 마찬가지란다. 모든 기준은 헌법을 따른다. 고로 그 법을 다루는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 신과 인간의 중간자, 신의 대리인이 될 수 있다는 게 엄마의 생각이다.
--- p.51
“너도 고양이처럼 되고 싶다는 거야?”
“무슨 말이에요?”
“자살하는 데 도와 달라는 거냐고.”
“글쎄요.”
모래의 남자의 욕망을 건드린 게 분명하다.
“누구를 위해서지? 나를? 너를? 난, 내가 왜 너랑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넌 사는 게 간단해 보이지? 간단해 보여도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간단하게만 생각하면 복잡한 걸 보지 못하지. 간단해 보이는 게 사실은 간단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간단하지도 못한 모래의 남자가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나간다. 구원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 그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건 명징하다. 나를 위한 게 남을 위한 건 될 수 없지만, 남을 위한 건 결국 나를 위한 걸 포장한 거다. 모래의 남자는 아직 얼마나 많은 걸 모르고 있는 걸까.
복잡한 건 간단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 p.77
너무 예쁜 게 죄가 된다는 건, 기꺼이 동의한다. 미필적 고의, 아니면 과실치상, 그것도 아니라면 원죄 정도가 되겠다.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미연이가 귀갓길에 얼굴만 집중적으로 심하게 폭행당한 적이 있었다. 경찰이 범인을 잡았다. 범행 동기는 미연이가 “너무 예쁘기” 때문이었다.
너무 못생긴 게 죄가 되는 건, 내가 동의하건 말건 원숭이들이 우글거리는 대한민국에서 ‘레알’이다.
--- pp.90~91
모래의 남자는 작고 빼빼 말랐다. 패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지 후줄근하다. 파란색 남방에 쥐색 점퍼가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 싸구려다. 패션에 관심이 없는 남자는 두 부류다. 자신감이 넘치거나 포기했거나. 모래의 남자는 분명 후자다. 언젠가는 자신감이 넘쳤던 적도 있었을 거다. 나는 언제 잃어버렸을까.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니다. 학교 성적과 비례하는 얕은 자신감 따위가 아닌, 깊은 곳에 저장된 자신감이 옛날 옛적에는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그 시선 속의 직유가 깊이 침범해 내 자존감을 조금씩 갉아 냈다. 성교육 시간에 본 낙태 동영상에서 태아를 긁어낸 것처럼. 아이가 기계를 피해 도망가듯 내 자존감도 달아나려 안달했다. 이젠 더 이상 도피하지 않아도 된다. 내 자존감은 내 안에 있는 거지 사람들이 볼 수 있거나 그들에게 보여 주는 게 아니란 걸,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깨달았다.
--- p.187
‘어린 백셩’을 현대어로 하면 ‘어리석은 백성’이다. ‘어린’이 ‘어른’이 됐을 거다. 그렇다면 ‘어른’의 어원이 ‘어리석은’이었던 게 틀림없다. 엄마, 방 변호사, 담탱이, 삼촌, 고모, 모래의 남자의 공통점은 어리석다는 거니까.
--- pp.197~198
난 엄마가 원하는 딸로 살 수 없었다. 엄마와 끝까지 함께 간다면 내 영혼은 조만간 고양이 밥이 됐으리라. 무리하지 않고 생긴 만큼 살고 싶었다. 난 ‘슬로’인데 엄마는 ‘속주’를 원했다. 엄마는 내가 ‘슬로’로 살지 못하도록 끝까지 방해했을 거다. 난 도저히 두 개의 삶을 살 수 없었다. 스물일곱 살까지라도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낙타가 다시 꿈에 나온다면 이런 진실을 말해 주고 싶다.
신화창조 사탐이 독립운동과 분단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김구의 죽음이 가장 안타까운 현대사라고 말했다.
“김구를 죽인 범인은 안두희가 아니야. 분단의 망령이지.”
엄마를 죽인 범인은, 엄마다.
--- p.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