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던 레스토랑이 또 폭삭 망했다. 벌써 세 번째였다. 모 시인은 본인이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라고 했지만 난 내가 일하는 곳마다 모두 폐허였다. 이만하면 사장님이나 가게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 것만 같다.
“정말 미안혀. 윤수 씨.”
사장님은 마지막 월급을 쥐여 주며 거듭 사과했다. 나는 얼결에 내가 더 미안하다 해 버렸다. 씁쓸한 얼굴로 입간판을 정리하던 사장님이 머뭇거리듯 내 이름을 다시 부른 건 다음 순간이었다.
“저 말이여, 윤수 씨.”
“네.”
“젊은 아가씨한테 묻기는 좀 저기 허지만, 혹시 가사도우미 해 볼 생각 있어? 원래 하겠단 아주머니께서 못 하겠다 그러셔서 좀 급한디.”
남들이 보면 스물여섯에 무슨 가사도우미냐 그러겠지만 난 흔쾌히 승낙했다. 당장 밀린 월세도 못 내고 있는 마당에 이것저것 일을 가릴 처지가 못 됐다. 물론 다른 가사도우미의 몇 배나 되는 월급이 이 일을 결정하는데 큰 몫을 했다.
“근디, 집주인이 연예인이여.”
보수만 들었을 때도 평범한 사람은 아닐 거라 짐작은 했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날 향해 사장님은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름이 그니까, 강, 강, 강 뭐라고 했던 것 같은디. 여하튼, 누군지는 가 보믄 알 거여. 거실에 대문짝만하게 사진이 붙어 있더라니께. 얼마나 잘났는지 우리 딸내미가 아주 죽고 못 살어. 스캔달 날까 봐 걱정된다고 남자를 구해 달라는디, 어디 도우미 할 남자가 있남? 어렵게 아주머니 하날 잡았더니마는, 아 글씨. 며느리가 애가 들어섰디야. 아니 솔직히 허는 말이지만 며느리 애 들어서는 거랑 도우미 일이랑 뭔 상관이여.”
그게 벌써 십오 분 전이었다. 모든 게 다 좋은 우리 박달수 사장님은 단 하나의 단점이 있었다. 바로 말이 아주 많다는 것. 이대로 있다간 앞으로 삼십 분은 더 ‘임신한 며느리 때문에 일을 그만둔 아주머니의 일대사’에 대해 들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사장님을 불러 맥을 끊었다. 사장님은 그제야 요점을 말했다.
“결론은, 그 강 뭐시기 씨가 요즘 바쁘고 혀서 집엔 잘 없다는구먼. 윤수 씨는 일주일에 네 번, 아홉 시 출근해서 할 일 다 허고 나오믄 돼. 여기서 할 일이란 것은 청소, 빨래, 음식 같은 걸 말하는 겨. 월급은 통장으로 매달 말일 입금해 주기로 내가 매니저랑 이야기를 했으. 계약서도 내가 들고 있응께. 윤수 씨가 지금 싸인을 하믄 내가 만나서 전해 주겠구먼. 일은 당장 다음 주부터 해 줬음 하는디. 어때 괜찮어?”
늘 사족이 긴 사람이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는데, 그러지 말걸 그랬다. 사장님이 가르쳐 준 주소로 찾아와, 사장님이 알려 준 비밀번호를 누른 뒤, 사장님의 말대로 어마어마한 집 안에 들어서, 거실에 떡 붙어 있는 사진을 본 나는, 한 발자국도 못 뗀 채 현관에서 얼어붙었다.
강무원.
사장님이 말한 그 연예인은 강무원이었다. 몇 해 전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순간부터 내 등에 달라붙어 떠나지 않는 이름. 헤어진 그날부터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얼굴. 그 눈동자. 그 손. 목소리. 말투. 걸음걸이까지. 내 열아홉 여름을 잠식했던, 그.
“우리, 도망갈까.”
내,
첫사랑.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