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포스터, 그 포스터가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시각적 요소가 배합되어야 한다. 독창성, 효과, 심미적 가치, 예술적 콘셉트, 솜씨 등이 중요한 이유다. 포스터는 정보다. 소통이다. 그리고 공유이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작업은 무한이다. 어떻게 간극을 좁힐 것인가.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작업에 그 무게와 디테일이 어느 정도인지 되돌아볼 일이다. 포스터 디자인에 담는 철학은 열정이며, 꿈이며, 진화며, 동기며, 희망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 p.33쪽
나는 오늘 멋진 식당으로 내 기억에 각인된 터키 대상의 집과, 개방식을 하고 얼마 안 있어 홀라당 불타버린 숭례문과, 너무나 멋지지만 국악방송이라는 온실 속에서 근근이 연명해가는 국악과, 문화와 삶이 온전히 융합됨을 보여주었지만 지금은 안타깝게 명맥이 끊긴 주련을 떠올리면서, 디자인이란 모래성처럼 ‘허물어뜨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가는 복층구조를 만드는 일, 그래서 ‘그때 그들의 것’을 ‘지금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 p.151
실질적으로 꼴라주 작업은 인쇄매체들이 쌓여지면, 그러한 것들을 찢어서 형태나, 색채의 표현으로 사용해서 하나의 반 입체 공간 구성으로 만드는, ?모으고, 비우고, 구성하는’ 그 ‘사이들’을 건너가는 반복 과정과 행위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또한 이렇게 1992년부터 시작한 꼴라주 작업은 디자인과 예술, 직업과 삶, 역사와 개인의 간격, 맥락, 관계, 관련 등을 바라보게 하는 ‘틈’과 ‘사이’도 만들었다. 이 ?사이’들을 바라보며 동시에 여러 종이들을 중첩하면서, 그 ?사이’에서 생기는 우연과 필연의 즐거움을 즐긴다. --- p.239
공공을 위한 디자인이란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표면의 두께만큼 그렇게 얇은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무한한 깊이가 있고 인간의 능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혼돈의 세계가 있다. 그 자체가 이미 우주이다. 그 전부를 헤아릴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생명에 관한 관계성의 맥락은 파악해야 한다. 관계, 이것은 우리라는 또 다른 말이다. 생명의 핵심이다. 관계가 없으면 그것은 이미 공공이 아니다. 공공이라는 명분 아래 수많은 생명들이 소수자의 권력 창출을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오만한 존재라는 것을 인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바벨탑신화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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