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대인게오서는 누가 돌아가셨습니까. 가슴에 검은 상장을 두르고 있는데.'
'신의 아비가 돌아가셨나이다.'
'그러하면 친상을 당하셔서 대상 중이신데 어찌하여 의병을 일으키려 하시나이까.'
이 말을 들은 허항이 눈을 부릅뜨고 말하였다.
'예로부터 군사부일체라 하였나이다. 나라의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다 같아 하나라는 뜻이나이다. 비록 이 몸은 아비에게서 나왔으나 나를 가르친 것은 스승이요. 나를 기른 것은 나라의 임금이나이다. 그러므로 어찌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나라의 위태로움을 모른 체할 수 있겠나이까.'
이 말을 들은 임상옥은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며 허항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임상옥은 말하였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말하시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껏 도와드리겠소이다.' <중략>
'물론 홍경래는 내게 있어 은인이라고 말할 수는 있네. 그러나 홍경래는 내게 은인이지만 의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네.'
말을 끝내고 나서 임상옥은 붓을 들어 종이 위에 문장하나를 써내렸다. 박종일은 임상옥이 쓴 문장을 읽어 보았다. 그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墨翟之守'(묵적지수)................
--- p.85-86 상도 3권 中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며, 따라서 신용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인 것이다.'
자신은 신용은커녕 최소한의 이익조차 남기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마친 객상이었지만 그가 남긴 교훈은 임상옥의 인생에 있어 귀중한 법도가 된 것이다.
'상즉인'
'장사는 곧 사람이며 사람이 곧 장사'라는 상도에 있어서의 제 1조는 임상옥이 평생을 통해 지켜나간 금과옥조였던 것이다.
--- p.202, --- pp.3-11,--- 제 4장 운명의 밤 중에서
작은 장사는 이문을 남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큰 장사는 결국 사람을 남기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철학이었다. 이는 <논어>에 나오는 구절인데 이인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사람이 이익대로 한다면 원망이 많다. 이익이란 결국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니 필히 상대방에게 손해를 주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이익을 좇으면 원망을 부르기 쉬우니 결국 '의를 따라야 한다.' 따라서 '군자가 밝히는 것은 의로운 일이요, 소인이 밝히는 것은 이익인 것이다.''
--- p.201
'이봐. 이 여인은 분명히 우리 조선 여인의 얼굴이야. 봐. 이 표정 봐. 울 밑에 선 봉서놔 같지 않아.' 회장님은 이 돈에 새겨진 이 조선족 여인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 슬픈 조선의 얼굴이다. 눈물나도록 슬픈 우리들 엄마의 얼굴이다. 우리 엄마의 엄마. 그 엄마를 낳은 할머니. 그 할머니를 낳은 할머니의 할머니 얼굴이다. 또한 시집간 누이의 얼굴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회장님은 이 돈을 자신의 지갑 속에 넣으셨습니다. 그때부터 이 돈은 회장님의 부적이 되었습니다. 회장님은 가끔 이 돈을 꺼내 이 돈에 새겨진 조선 여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도 하셨습니다.'
--- p.81
우리나라가 낳은 최대의 무역왕이자 거상이었던 임상옥의 발견은 우리나라에도 상업에 도를 이룬 성인이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였으며,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기업인들에게도 자랑할 만한 사표로서 임상옥을 부각시키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임상옥은 죽기 직전 자신의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였고, 이란 유언을 남긴 최고의 거상이었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라는 그의 유언은, 평등하여 물과 같은 재물을 독점하려는 어리석은 재산가는 반드시 그 재물에 의해서 비극을 맞을 것이며, 저울과 같이 바르고 정직하지 못한 재산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 재물에 의해서 파멸을 맞을 것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 책머리에
앞에만 머리카락이 있고 뒤통수는 대머리인 것은 바로 기회이나이다. 무슨 일이든 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인 기회는 자주오지 않나이다. 사림이 살아가는 데 있어 세번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고들 말하나이다. 기회는 찾아올 때 그 머리카락을 붙들고 놓지 말아야 하나이다. 기회는 앞에만 머리카락이 있어 왔을 때 잡아 붙들어야 합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스텨 지나간 기회는 이미 그 뒤통수가 대머리여서 붙잡으려 하여도 붙잡을 머리카락이 없는 법이나이다.
--- p.247~248
순간 임상옥은 당황하였다. 내가 쓴 글씨가 비단 속옷 위세 쓴 글씨와 같지 않고 다르다니. 어째서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저 비단 속옷은 분명히 내가 5년 전 헤어질 때 장미령에게 사는 곳과 이름을 적어 주었던 바로 그 속옷이 아닐 것인가. 그때 장미령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자신의 비단 속옷을 들고 임상옥에게 말하였었다.
--- p.293-294
'상업의 길'(商業之道).
일찍이 태사공(太史公)은 <사기>에서 '못이 깊으면 고기가 그곳에서 생겨나고 산이 깊으면 짐승이 그곳으로 달려가며 사람이 부유하면 인의가 부차적으로 따라온다'고 말하였다. 이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오직 부유하기 때문에 인의가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부유보다는 마땅히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인도(人道)가 있어야만 인의(人義)가 따라오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상업의 길'이라고 부를 만하다.
가포는 평생 부를 모아 마침내 조선 팔도에서는 그 누구도 당할 수 없는 거부가 되었다. 그러나 가포는 일찍이 공자가 말하였던 대로 '상업이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義)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것에 충실하여 평생동안 인의를 중시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아 재물보다는 사람을 우선하였다.
따라서 그는 평생동안 재물을 모았지만 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황금을 벌었으나 이는 다만 채소를 가꾼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그를 '채소를 가꾸는 노인'이라 부를 만하다. 고로 그를 상불(商佛)이라 불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즐겁고 기쁜 일이다.
--- p.256:13---p.257:14----제5권 중에서
도척은 도둑의 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집안에 간직한 재물을 밖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을 성(聖)이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 1의 도다. 그 다음엔 선두에 서서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용(勇)이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2의 도다. 그 다음엔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義)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 3의 도인것이다. 그다음엔 도둑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지(知)라고 한다.
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4의 도인것이다. 가장 마지막에는 훔쳐온 물건을 덜 갖고 치우침없이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인(仁)이라고 한다.이것이 도둑이 지켜야 할 제5의 도인것이다. 이다섯가지 도를 터득하지 못하면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큰 도둑은 절대로 되지 못할 것이다.
--- p.105
개성 상인 박종일은 남문 성곽 아랫마을의 임씨 집성촌에 들러서야 마침내 임상옥의 행방을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다음날 금강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의주에서 임상옥을 찾아내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암상옥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찾을 때까지 의주를 떠날 수 없을 만큼 박종일에게는 이 일이 중차대한 일이었다. 임상옥을 찾고 못 찾고는 상인으로서의 그의 운명이 걸린 일이었다. 임상옥을 만나 그에게 전해줄 물건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만약 임상옥을 만나지 못해 그 물건을 전해주지 못한다면 박종일은 그만큼 상인으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어 있었던 깃이다.
천신만고 끝에 박종일은 임상옥이 속세를 떠나 입산출가하였음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것이 벌써 일년 전. 일년 사이에 임상옥이 또다시 다른 사찰로 거처를 옮겼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금강산 속에 있는 추월암으로 그를 찾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종일은 가파른 바윗길을 오르고 올라 마침내 산정에 이르렀다. 그가 임상옥을 만난 것이 기록에 의하면 7월 14일. 7월이면 한여름의 성하. 무더위를 무릅쓰고 산정에 오른 박종일은 산 아래 펼쳐진 너른 만주땅의 벌판을 땀을 닦으며 내려다보았다.
산정에는 대여섯 게의 요사체로 구성된 암자가 우뚝 솟아 있었다. 가파른 계단 위 암자로 들어가는 전문 위에는 '추월암'이라는 현판이 내걸려 있었다. 어림하여 5백 년 이상 된 사찰로 한때 묘향산에 오래 있어서 서산대사라고 불리던 청허 휴정 스님도 젊었을 때 이 암자에서 공부했던 유서 깊은 사찰인 것이다.
---pp.1권 231~232
'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며, 따라서 신용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인 것이다.' 자신은 신용은 커녕 최소한의 이익조차 남기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마친 객상이었지만 그가 남긴 교훈은 임상옥의 인생에 있어 귀중한 법도가 된 것이다. '상즉인'
'장사는 곧 사람이여 사람이 곧 장사' 라는 상에 있어서의 제 1조는 임상옥이 평생을 통해 지켜나간 금과독조였던 것이다. 임상옥이 장미령의 몸을 사서 그녀를 자유의 몸으로 살려준 것도 '이를 남기기보다 의를 좇으려는' 그의 상도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문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종자돈뿐 아니라 공금 횔령해서까지 가진 동을 모두 털어 한 여인의 생명을 구해내었다. 그는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버린 것이다.
--- p.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