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동양의 고전으로 오늘, 우리를 읽는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고조되고 있다. 이는 바로 급속한 사회변화에 따른 인간 존재의 소외감 내지는 열등감에 대한 역작용이기도 하고, 또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접목되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문화콘텐츠 산업이 새로운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동양적 인문학의 세계를 일찍이 수립하였고, 그로 인해 세계의 문명을 선도해 왔던 중국의 고전에 녹아 있는 지혜는 우리가 급변하는 오늘의 세계를 살아가는 데도 여전히 귀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고전이란 ‘시간과 공간의 시련을 견디고 살아남은 인류역사의 정신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중국 고전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것은 중국인들의 민족적 특성으로 일컬어지는 ‘역사와 경험의 중시’에 의한 산물이기도 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감이 되다
전쟁과 평화, 혼란과 안정이 반복되었던 중국 고대의 상황은 비록 시간과 공간의 차이는 있다고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하는 오늘의 현대사회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들 명언명구 또는 고사성어가 가지고 있는 지혜나 격언적인 의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유의미할 것이다. 때문에 이 책에서는 주로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되는 고전의 명구를 비롯하여 역사성어 등을 중심으로 그것이 생겨난 유래와 배경, 그리고 현대적 의미를 서술한다.
일상의 인문학을 통한 온고지신의 방법
공자는 과거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당시대적 의미에 대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을 부여하였으며 그로부터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내었다.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물의 관계를 들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를 듣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 선정규 교수가 2012년 5월 4일 KBS1 라디오 전국방송에서 지금은 실버시대를 진행하면서 지영서 아나운서와 함께 진행했던 이야기들을 토대로 1~2월, 3~4월, 5~6월, 7~8월, 9~10월, 11~12월로 나누어 절기별로 동아시아의 문화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공자의 아들 교육법, 동양과 서양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복福’자를 거꾸로 붙인 유래, 중국의 관리와 조선 선비들의 여름 피서법, 추석의 송편과 월병 등등을 살필 수 있다.
지도자의 품격
공자가 대화를 통해서 온고지신을 실행했던 것을 오늘날에 적용하면 결국 소통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회사의 CEO든, 조직의 대표자든, 아니면 일국의 정치 지도자든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밀고 나가서는 그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결과를 성취하지 못한다. 주나라 무왕이 태공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태공이 이에 대해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방법은 바로 백성을 사랑하는 것일 따름이다”라고 한다. 그러자 무왕이 다시 “어떻게 해야 백성을 사랑할 수 있는가?”라고 재차 묻는다.
『매일 읽는 인문학: 일상의 인문학을 통해 보는 ‘어떻게 온고지신할 것인가』에서는 주나라 무왕의 문제제기처럼, 특히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어떠한 자질과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소통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인재 등용의 철학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집중적인 고민을 들어볼 수 있다.
- 책속으로 이어서 -
당 태종의 세 개의 거울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자신의 의복과 모자를 단정히 할 수 있고, 과거의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국가 흥망의 규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득실과 시비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위징이 세상을 떠났으니 나는 거울 한 개를 잃어버렸다.”
이상은 모두 사마광의 『자치통감』에 기록된 내용이다. 역사를 귀감으로 삼아 난세의 우를 더 이상 범하지 않았고, 또 위징과 같은 직언을 아끼지 않는 신하를 언제나 가까이 두었기 때문에 절대군주인 당 태종은 일대의 성군이 되었다. (84쪽)
공자의 아들 교육
『논어』 기록으로 우리는 우선 공자의 자녀교육에 대한 자세를 살필 수 있다. 그것은 먼저 “군자원기자君子遠其子”, 즉 “군자는 자신의 자식을 멀리 한다”, 다시 말해 군자가 자신의 자식을 교육할 때는 반드시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 진항은 공리가 자신의 스승인 공자의 아들이기 때문에 자신들과는 다른 무슨 특별한 교육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주위에 아무도 없는 틈을 이용해서 공리에게 그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자신의 자식이라고 해서 결코 특별한 시간을 할애하거나 별다른 내용을 교육시킨 것이 아니었다. 정원에 서서 사색에 잠겨 서 있다가 우연히 아들이 그 앞을 지나가자 마치 지나가는 말로 시와 예를 공부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따름이다. (139쪽)
공자의 여성관
전통사회의 남존여비 사상의 근원을 많은 사람들이 공자의 여성관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공자의 여성관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바로 『논어?양화陽貨』편의 “유여자여소인위난양야唯女子與小人爲難養也, 근지즉불손近之卽不遜, 원지칙유원遠之則有怨”의 구절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널리 성행하는 일반적인 해석에 따라 우리말로 옮겨 보면, “여자와 소인은 그들과 함께 하기가 어렵다. 가까이 하면 불손하고, 멀리 하면 원망한다”가 된다. ‘소인’은 ‘군자’에 상대되는 말이다. 도덕적 품성을 갖추지 못하고 사회적 책임의식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하류의 소인을 여자와 동등시 했으니 당연히 공자가 여성을 비하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공자의 여자와 소인에 관한 이 구절은 결코 여인을 소인에 빗대어 비하한 말이 아니다. 고대의 한어 어법을 잘못 이해한 관계로 오랜 기간 동안 오역을 해왔던 것이다. (143쪽)
더위를 피하는 법
열흘에 한번 쉰다고 했을 때 1년이면 모두 36일이 휴일이었다. 거기다가 하지와 동지 같은 중요 명절은 물론 자식의 관례를 지낼 때는 3일, 자식의 혼사를 치를 때는 9일 등으로 법률에 따라 일정기간의 휴가가 부여되었다. 특히 부모가 3000리 밖에 거주하면 3년마다 30일, 500리 밖에 거주하면 5년마다 15일의 특별휴가도 부여되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문관은 강제적으로 3년 동안 휴직해야 하였고, 무관은 100일을 휴직해야 하였다. 그리고 스승이 돌아가시면 역시 3일간의 휴가가 부여되었으며, 황제의 생일에는 3일, 노자의 탄신일과 부처님오신 날인 초파일에는 하루를 쉬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1주일에 일요일만 휴일이었고, 국공휴일이나 중요명절이 휴일이었으니까 1년에 대체로 60일 정도가 휴일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중국 당나라 때 관리들의 휴일수가 오늘날에 비해서 결코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02~203쪽)
한가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본 고승 엔닌(圓仁, 794~864)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서는 추석은 신라가 발해와 싸워 이긴 기념일이기 때문에 그날을 명절로 삼고 일반 백성들이 온갖 음식을 만들어 먹고 가무로써 즐겁게 논다고 하였다. 이런 것을 보면 추석은 아주 오래된 우리의 고유 명절임을 알 수 있다.
또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期』에는 추석은 새 곡식이 익고 추수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닭고기 막걸리 등으로 이웃들과 실컷 먹고 취하여 즐기니 ‘오월농부五月農夫 팔월신선八月神仙’이라고 했다. 오뉴월에는 땡볕에서 구슬땀을 흘리면서 일을 해도 먹을 것이 신통하지 못하지만, 팔월이 되면 온갖 햇곡식이 수확되고 멀지 않아 모든 곡식을 거둬들이게 되므로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닭이나 돼지를 잡고 막걸리도 빚어서 잘 먹고 지낼 수 있었으므로 팔월에는 농부가 신선神仙과 다름없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이 추석을 전후하여 옛날에는 ‘반보기(中路相逢)’를 하였다. 옛날에는 여자가 시집을 가면 여간해선 친정에 가기가 쉽지 않아 친정 부모님은 항상 시집간 딸이 궁금하고 또 시집간 딸은 친정부모를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언제나 바쁜 시집살이로 시간을 내기 어렵고 다만 명절 뒤에는 얼마간 한가하나 정월 설이나 보름에는 부녀자들이 나들이를 꺼리기 때문에 가을 추석 뒤가 가장 알맞은 시기가 된다. (238~240쪽)
군주에게도 등급이 있다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선택의 한 표를 던질 때, 후보자 본인의 능력과 경력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 후보자들 주변에 과연 어떤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는가를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용인用人 즉 어떤 사람들을 등용하는가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국정 철학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군주에게도 상중하 등급이 있다. 무릇 본인 스스로의 힘을 잘 발휘하는 자는 하군下君이다. 타인의 힘을 잘 선용하는 자는 중군이다. 타인의 머리를 잘 사용하는 사람은 상군이다.” (261쪽)
인류사 최고의 참모: 야율초재
민주주의는 누구나 이해하듯이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시되는 정치제도이다. 여론을 수렴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소요되는 과정이 때로는 낭비적이고 불필요한 헛수고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사람의 이익보다는 천하 사람의 이익을 위해 지불해야 할 필수적인 과정이요 대가일 따름이다. 사마천은 『오제본기』에서 순임금이 즉위하여 신하들에게 법률을 제정하고 공포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강조했던 것이 바로 “흠재흠재欽哉欽哉”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흠재흠재란 우리말로 옮기면 바로 “신중하라 신중하라”이다. (290~2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