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상한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왜놈들이 물러가면 우리 힘으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지만 그 기쁨도 잠시, 소련군이 평안북도 정주군을 점령하면서 일상 속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분이 아버지는 시인이자 중학교 국어 선생님으로 근무하면서 학교에서도 이념과 사상을 강요받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자, 분이네 가족은 평양으로 이사를 갑니다. 평양에서의 상황도 나아지지는 않았는데요. 분이 아버지는 자신의 시집이 검열에 걸려 판매 금지가 되자 경성으로 홀로 떠나게 됩니다. 아기를 임신한 어머니는 출산 전에 남편을 만나러 경성으로 떠날 계획을 세웁니다. 어머니는 경성으로 가는 길이 험하고 위험해 분이와 숙이, 정이만을 데리고 할머니와 어린 자녀들은 집에 두고 경성으로 향하게 됩니다.
“엄마, 총소리가 더 가까워졌어요. 어서 일어나세요, 어서!”
“헉헉헉, 아이고 죽겠네.
경성으로 가는 길은 목숨을 걸 만큼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남쪽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더욱 감시가 철저하게 이뤄졌고, 몸이 무거운 어머니와 분이, 숙이, 정이는 경성으로 가는 길 가운데 갖은 고생을 겪게 됩니다.
해주역에서 바닷길을 따라 이남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 분이네 가족은 드디어 경성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습니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어렵게 올라탄 기차 안에서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쉰 분이네 가족은 아버지와 만나는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경성으로 향합니다.
“혹시 이 사람이오?”
“맞아요, 맞아! 애들 아버지가 맞아요.”
아버지가 경성 땅 어디에 사는지도 알지 못한 채, 경성에 도착한 분이네 가족은 평안도에서 온 사람들이 경성에 오면 꼭 묵는 여관인 남오여관을 찾았습니다. 경성에 오면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던 아버지는 일주일이 넘도록 만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여관 주인의 도움으로 아버지가 남긴 연락처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연락처에 쓰여 있는 마포 도화동으로 가보았지만 그곳에도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경성이 제아무리 넓어도 어떻게든 내가 아버지를 찾을 거야, 꼭”
그리운 아버지는 어디에 계신 걸까요? 아버지를 찾지도 못한 채 임신 중이었던 어머니는 막내인 순둥이를 출산하게 되고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고, 도화동에 방을 얻었습니다. 분이는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우며 아버지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데요. 시간은 야속하게도 자꾸 흘러가고 아버지는 어디에 계시는지조차 알 수 없어 슬프기만 합니다. 어느 날 물동이를 지고 공동 수돗가를 향하던 분이는 골목 저 멀리에서 두리번거리며 뛰어 올라오는 아저씨를 보게 됩니다. 그 아저씨는 분이의 아버지일까요? 드디어 분이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요?
“여보세요, 강분이 할머님 되시죠?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최종 상봉인으로 선정되셨어요.
“네? 제가 정말 상봉인 명단에 들었다고요?”
강분이 할머니는 6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최종 상봉인 100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꿈같은 소식에 기쁨도 잠시, 북한에 두고 온 동생 순이와 옥이 생각에 또다시 애잔한 슬픔이 밀려옵니다. 강분이 할머니는 헤어질 때 5학년이었던 순이가 이제는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는데요. 헤어져 있었던 긴 시간만큼 그리움의 크기도 커져만 갔습니다.
‘순이야, 옥이야. 너희가 맞지? 순이는 말하지 않아도 한눈에 알아보겠구나!’
2015년 10월 이산가족 상봉의 현장에서 동생 순이와 옥이를 만나기로 한 강분이 할머니의 손엔 미처 전하지 못한 빛바랜 편지와 동생이 헤어질 때 건네준 낡고 작은 주머니가 들려 있었습니다. 평생 가족을 다시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 강분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을 겪고 이산가족이 되어 평생을 그리움 속에 살아낸 어르신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는데요. 그렇기에 전쟁의 참상과 슬픔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이 땅에서 다시는 그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모두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