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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꼭 행복해야 하는가
중고도서

나는, 꼭 행복해야 하는가

정용주 | 새움 | 2011년 08월 1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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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8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00g | 136*200*20mm
ISBN13 9788993964325
ISBN10 8993964327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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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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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꿈을 꾼다. 배낭을 메고 친구들과 어울려 오고 싶을 때는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곳인데도 굳이 “짐 보따리를 싸서 들어오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에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한다. 애들 졸업시키고, 정년퇴직하고, 더 늙기 전에 돈을 모아 땅도 사고 그럴듯한 집이라도 지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라고. 살아가면서 어느 때가 되어야 자신의 할 일을 다 끝내고 미뤄뒀던 삶을 시작해도 되는 때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누구나 지금의 모습이 결국 제 살고 싶은 모습 아닌가 하는 것이다.
짧은 방문을 끝내고 어둑해진 산길을 내려가던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떠나온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차마 버리고 떠날 수 없는 것들을 갖고 있는 당신들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냐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그를 마중 나갔다. 초등학교 시절의 어린 모습만을 생각하고 대합실을 기웃거리며 찾았지만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내 어깨를 툭 치며 인사를 하는, 청년이 다 된 남자가 바로 나를 찾아온 방문객 ‘등하’였다. 환하게 인사하며 밝고 당당하게 보이는 등하의 내면에 어떤 괴로움이 있어 인적 없는 산속에 사는 삼촌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을까 생각하고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사흘 동안 깊은 잠을 잤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밥을 차려주고 그 밥을 먹고 나면 다시 잠을 잤다. 나는 그에게 알량한 훈계나 잔소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간섭하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고 밤나무에 매어놓은 그네에 앉아 초록이 짙게 물드는 먼 능선을 바라보고 있는 등하에게 물었다.
“그래 한 사흘 지내보니 어떤 생각이 드니?”
“삼촌, 인생의 고민이 하나도 없어졌어요!”
그도 웃고 나도 웃었다.

……우선 선생님이라는 말에 혼자도 얼굴이 빨개졌다. 계곡물 받아먹고 나무하고 벌 키우고 몇 평 텃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이 생활도 어느 누구에게는 막연한 호기심이나 동경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쑥스러운 웃음이 나왔다.
나는 과연 평화로운가. 그리고 행복한가? 툇마루에 앉아 먼 능선을 보며 잠시 생각해본다. 그것이 기쁨이나 행복 아니면 불행이나 괴로움의 상태일지라도 한 가지의 감정만 오래도록 지속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나에게 작은 선물을 보낸 이분은 도시 속에 살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푸른 숲과 맑은 냇물 그리고 아름다운 꽃밭을 가꾸며 사는 사람이리라. 어떤 이는 눈으로 보는 것을 어떤 이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먼 곳에서 문득 날아온 연분홍빛 편지 한 장. 그 빛깔의 봉숭아 꽃잎이 지금 비탈진 꽃밭 햇볕 아래 고요하다. 나의 이 삶의 방식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또한 그것은 내 고독에 대한 위로가 되지 않겠는가. 초코파이를 한 입 베어 먹으며 고추밭 말뚝에 걸쳐놓은 장갑을 낀다.

빗방울 꽃이 무수히 피어나는 마당에 옷을 홀딱 벗은 개구리 한 마리가 당당하게 등장한다. 얼굴에 커다란 빗방울 두 개를 단 것처럼 튀어나온 눈을 멀뚱거리고 손바닥에 침을 튕기듯이 어디로 갈까 궁리하더니 잡풀 무성한 꽃밭으로 껑충 뛰어간다. 아 그렇지! 소낙비는 저렇게 맞는 것이지. 어린 날 시골에서 자랄 때 이 소낙비를 푸른 벼 포기 출렁이는 들판에서 맞았다. 운동회 때 얻어 입은 광목 빤스 한 장 걸치고 구멍 뚫은 깡통과 체를 들고 갯둑 넘어 논과 논 사이 도랑으로 달려가서 송사리 붕어 미꾸라지를 잡으며 종아리에 풀독이 들도록 뛰어다녔다. 소낙비의 생명력을 온몸으로 흠뻑 받으며 벼 포기 옥수수 해바라기처럼 어린 몸을 키웠다.
마당을 가로지른 알몸의 저 개구리가 어린 시절의 나인가? 갑자기 소낙비를 온몸으로 맞고 싶은 충동이 솟구쳐 윗도리를 훌떡 벗어 던지고 마당으로 나간다. 백일홍처럼 얼굴을 들고 비를 맞는다. 무수한 빗방울이 세월에 찌든 내 몸의 혈관을 두드려 깨운다. 이 순간은 나도 무수한 나무 중의 한 나무이며 풀꽃 중의 한 꽃이다. 순간 아랫도리까지 훌렁 벗어던지고 싶지만 참기로 한다. 그래도 나는 개구리는 아니지 않는가?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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