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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7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80쪽 | 424g | 124*178*30mm
ISBN13 9791155814918
ISBN10 1155814916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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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천천히 서로를 알아갔고, 알고 나서는 금세, 깊이 사랑에 빠졌다. 남자는 고백과 청혼을 했으며 여자는 청혼을 승낙했다. 누가 더 상대의 이상형에 가까운지, 누가 더 행복했는지 가려낼 필요도 없었다. 짧은 행복의 시간이 이어졌으나, 너무 짧았다. 곧 고난이 닥쳐왔다. 월터 경은 허락을 구하는 말을 듣고도 허락하지 않거나 딱 잘라 안 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대신 경악과 냉정함, 침묵으로 일관했고, 딸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숨기지 않음으로써 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는 이 결합을 대단히 굴욕적으로 여겼다.
--- p.42

어퍼크로스가 불과 5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긴 해도, 원래 있던 곳에서 벗어나 다른 무리 속으로 옮겨가게 되면 대화나 견해, 생각이 완전히 확 바뀌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머물 때마다 항상 그런 인상을 받았다. 다른 가족들도 여기로 와서, 켈린치 홀에서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고 모든 관심이 집중될 만한 일들이 여기에서는 얼마나 무심하고 대수롭지 않게 취급되는지 보았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자신의 세계 밖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하는 교훈도 깨우쳐주곤 했다.
--- p.63

가만히 두고 보는 대신 기꺼이 도와준 그의 친절, 예의 바른 태도, 말없이 조용히 처리하는 태도, 이 모든 것을 생각하느라 앤의 머리는 복잡했다. 그러나 그가 아이와 시끄럽게 노는 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아 앤에게 감사의 말을 듣고 싶지 않고, 그와의 대화를 전혀 원치 않는 것이 확실해졌다. 이런 소란으로 일어난 복잡하지만 대단히 고통스러운 마음의 동요가 채 가라앉기 전에, 때마침 내려온 메리와 머스그로브 자매에게 어린 환자의 간호를 맡기고 방에서 벗어났다. 앤은 그 자리에 계속 있을 수가 없었다. 네 남녀 간의 애정과 질투를 관찰해볼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들은 이제 모두 한자리에 모였지만, 앤은 같이 있을 수가 없었다.
--- p.120

그가 자신이 지쳤음을 눈치채고 쉬게 해주기로 마음먹었음을 알았다. 이 모든 것들로 자신에 대한 그의 마음이 명백해졌고, 앤은 이에 크게 감동했다. 이 사소한 사건이 이전에 지나간 모든 일을 완결지어주는 듯했다. 앤은 그를 이해했다. 그는 앤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무심할 수도 없었다. 과거 일로 그를 원망하고 부당한 분노를 품으면서도, 그에게 전혀 관심 없는 척 굴면서도, 또 다른 이에게 마음을 붙여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누르지 못했다. 예전의 감정이 아직 다 사라지지는 않은 것이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순수한 우정의 충동적 발로였다. 그에게 따뜻하고 상냥한 마음이 있다는 증거였다. 앤은 기쁨과 고통이 복잡하게 뒤엉켜서 어느 이 더 우세한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 p.136

굵은 빗방울에 창에서 어렴풋이 보이던 몇 안 되는 것들도 거의 보이지 않게 된 흐린 11월 하루, 한 시간을 꼬박 이런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레이디 러셀의 마차 소리가 더할 나위 없이 반갑게 들렸다. 하지만 아무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어도 본가를 떠나면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불편하고 시커먼 베란다가 있는 코티지에 작별인사를 고하면서, 또는 김 서린 창 너머로 마을 맨 끝의 초라한 농가들을 보면서 서글픈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어퍼크로스를 지나며 보는 풍경들이 다 소중했다. 그곳은 한때는 격심했으나 이제는 누그러진 수많은 고통의 감정들, 사그러진 감정과 우정, 화해의 경험들, 다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언제나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앤은 이런 기억만을 안고, 그 모든 것을 뒤로했다.
--- p.180

엘리엇 씨를 질투한 것이다! 이해할 만한 동기는 그것뿐이었다. 웬트워스 대령이 나의 애정을 놓고 질투한다고! 일주일 전이었다면 믿을 수 있었을까. 세 시간 전이었다면! 잠시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그러나 어쩌면 좋을까! 전혀 다른 생각들이 뒤를 이었다. 이런 질투심을 어떻게 잠재우면 좋단 말인가? 어떻게 해야 그에게 진실을 알려줄 수 있을까? 그들 각자가 처한 상황이 이렇게나 온통 불리한 것투성이인데, 어떻게 그가 앤의 진짜 감정을 알게 될까? 엘리엇 씨의 관심을 생각하니 괴로웠다.
--- p.284

앤이 열렬히 외쳤다. “아! 대령님이, 그리고 대령님과 비슷한 이들이 느끼는 감정이라면 저도 충분히 이해해요. 제 동포가 느끼는 따스하고 충직한 감정들을 제가 어찌 얕잡아 보겠어요! 참된 애정과 지조는 여자들만이 안다고 감히 말한다면 경멸받아 마땅하겠지요. 아뇨, 남자들도 결혼생활을 아주 훌륭하게 잘할 수 있다고 믿어요. 남자들이 꼭 필요한 일을 위해 애쓰고, 가정에서도 관용을 베풀 수 있다고 믿어요.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남자들에게 목표가 있기만 하다면요. 제가 여자들을 위해 주장하는 모든 특권은(그다지 부러워할 만한 것은 아니지요. 대령님은 탐내실 필요가 없어요) 더 이상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도, 희망이 없어져도 끝까지 오래 사랑하는 것뿐이지요.”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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