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에서 태어나 머물렀던 시간은 15년도 되지 않지만 내가 쓴 소설의 절반 가까이가 상주를 무대로 상정한 것들이다. 자연, 마을, 사람, 사물, 관계마다 이야기가 없는 곳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내 관심사의 가장 앞쪽에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답게 사는 풍경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거기에는 삼라만상 중에 사람이 귀하고 높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상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향의 황홀한 맛」중에서
날씨에 유난히 영향을 받는 게 작가라는 족속이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그린 사람을 포함해서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오죽하면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이강백 작)라는 연극이 있을까. 날씨가 조금만 더워도 짜증나서 못 쓰고 조금만 추우면 시려서 못 쓴다. 날씨가 좋으면 이런 좋은 날 놀지 않고 써서 뭘 하나 싶어서 못 쓴다. 바람 불어 좋은 날에 연인이라도 있으면 싱숭생숭해서 못 쓴다. 결국 아무 때도 못 쓴다, 마감이 없으면.
---「비야리카 화산의 좋은 시절」중에서
청춘의 어느 순간, 공간은 솔푸드처럼 살아가는 내내 그때 그 시공으로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영혼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던 곳, 내 인생의 한 장면이 만들어지던 신촌의 다방에 대한 추억은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처럼 대뇌피질에 남아 있다.
---「솔푸드 다방」중에서
나는 그때 일생분의 걷기 여행을 경험했다고 여겼다. 다시는 혼자 걷지 않아도 되리라고, 혼자 걷는 일은 더 이상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고독한 방랑자에게 길은 속살을 열어 보여주었다. 집들은 덤덤하게 생활의 연기를 뿜어냈다. 그렇게 한 달을 걸어 다녔다. 제주도에서 가장 높은 오름, 한라산 정상에도 올랐다. 아득히 뻗은 눈길 위를 걷고 또 걷는 동안 머릿속에서 구름과 안개가 개었다. 열이 나고 땀이 났다. 그렇지, 이게 삶이라는 것이다. 나는 내 문제가 풀린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내게 다가올 삶이 이와 같을 것임을, 마주치는 존재들이 몸소 보여주었다. 삶 속에는 지옥도 극락도 있으리라. 비참함과 고상함은 인간 얼굴의 다른 표정일 뿐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시작된다」중에서
어떤 음식을 평생 맛있게 먹었을 때의 그 맛을 찾는 건, 그때의 자신을 찾는 것과 같다. 잊지 못할 첫사랑을 찾아가서 왜 모습이 달라졌느냐고 항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깍쟁이네 경사 났네」중에서
치즈를 손에 들고 있으면 가만히 기다린다. 주면 그제야 먹기 시작한다. 법도가 있는 것이 스님들의 탁발 행각을 보고 배운 듯하다. 보시는 무작정 베푸는 호의가 아니라 내 나름의 선업을 쌓은 것이니 보시를 받아주는 어미 개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천지가 물감을 푸는 강진」중에서
실크로드는 이미 어린 시절 내게 나 있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꿈길이 뻗어 간 곳을 끝까지 가보고 상상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보는 게 아닐까. 나는 아직 채 어른이 되지 못했다. 세상에는 가보아야 할 길이 아주 많이 남았으니.
---「그 많던 뽕과 오디는 어디로 갔을까」중에서
홀린 듯 오디를 따서 먹었다. 달콤했다. 과자의 인공적인 맛과는 다른 천연의 맛이었다. 일행이 모두 멈추어 뽕나무에 달라붙었다. 그 뒤부터 뽕나무 아래서는 자전거가 저절로 멈추었다. 자연스럽게 마을과 들길을 따라 낸 자전거 길에는 뽕나무가 꼭 있었다. 오디는 한 시간에 몇 킬로미터, 하루에 얼마를 주파하느냐를 가지고 속도전을 벌이던 우리에게 길은 그렇게 가는 게 아니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앵두길 500리, 오디를 따라가다」중에서
고개를 들고 손을 뻗어서 딴 오디를 입에 넣고 고개를 수그려 주운 오디를 입에 넣었다. 나는 손을 멈출 수 없었다. 뽕나무와 누에, 오디는 이미 내 존재의 일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 몸의 어느 한 부분은 오디가 만들었을 수 있고 내 기억의 깊숙한 곳에 있는 회로에는 분명히 뽕과 오디, 누에가 들어 있었다.
---「그 많던 뽕과 오디는 어디로 갔을까」중에서
골곰짠지를 씹으면 눈 밟을 때나는 소리와 비슷한 ‘꼬드득’ 소리가 난다. (…) 그 실질의 소리는 가까이 있는 우리의 뇌리에 도달해서 또 다른 소리를 불러일으킨다. 골곰짠지와 우리 각자의 어린 시절이 한 손씩 내밀어 추억과 본연의 맛이라는 박수 소리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고향의 황홀한 맛」중에서
바닷물이 든 무거운 물통을 메고 들고 20리 길을 걸어서 집으로 오는 소년, 오빠와 남동생의 책가방을 든 소녀, 겨울 칼바람에 빨개진 그들의 손이 생각났다. 어둑한 호롱불 아래서 맷돌로 콩을 갈거나 아궁이에 불을 넣고 솥을 젓다가 꾸벅꾸벅 조는 부모를 떠올리자 갑자기 내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비로소 원조의 맛이 뭔지 알 것 같았다. (92쪽)
---「원조 맛의 비밀」중에서
마침내 경기가 끝났을 때 내 목에서는 쉰 소리가 났다. 온몸이 제대로 된 안마라도 받은 듯 개운했다. 5달러짜리 랩터스 티셔츠를 하나 샀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사람들에게 오락을 제공하고 돈을 우려내는 방식이구나 싶으면서도 어쩐지 싫지 않았다. 부족 간의 전쟁을 연상시키고 삶에 보탬이 안 되는 소비를 부추기며 드라마처럼 사람들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싶으면서도 재미있었다.
---「돈값을 한다」중에서
토레스델파이네 계곡 아래에 핑크와 옥색의 빙산이 떠 있는 호수가 있어요. 거기로, 불교에서 말하는 풍도지옥처럼 살을 에는 듯한 거센 바람이 불어와요. 서 있기가 힘들 정도로. (…) 그 삭막함, 천애의 무덤 같고, 세상의 끝처럼 아무런 꾸밈없고 가차 없고 무정한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세상 안에 살면서 일생의 절반은 세상 바깥을 꿈꾸는 아이러니가 삶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 해주고.
---「에필로그- 죽기 전에 다시 가보고 싶은 곳」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