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꿈꾸지 않았다"
1883년 레바논에서 태어난 칼릴 지브란은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빈민가 학교에 다니던 그는 특히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그를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하던 가족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그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힘든 보스턴 생활에서 그를 구원한 이는 열 살 연상의 메리 해스켈이었다. 그녀는 지브란의 전시회에서 알게 된 후로 25년간이나 사랑의 편지를 주고받은 영혼의 연인이었다.
해스켈의 도움으로 파리 유학을 떠난 지브란은 로댕과 교유한다. 로댕은 그의 작품성을 인정해 두 번씩이나 자신의 살롱에 전시하게 했고, 화가이자 시인인 블레이크를 소개해주었다. 블레이크는 이후 지브란의 작품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전시회가 끝난 뒤 《아메리칸》지에 실린 작품평
"그의 작품에는 고독과 더불어 이따금 황폐한 느낌까지 흐르고 있으며, 아무리 좁은 공간에라도 무한으로 이어지는 선이 암시되어 있다. 그가 추구하는 세계는 매우 근본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마치 한 생명이 태어나기 전 무한의 자궁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꿈틀거리는 거대한 힘과 같다고나 할까.
삶과 죽음이 결국은 하나라는 신비 앞에서 인간의 영혼이 자의식의 고독에 눈뜨는 과정이 바로 그의 작품이 상징하는 바이다."
《예언자》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전세계 불후의 명작
지브란은 파리에서 돌아온 후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평생 은둔한다. 이 시기에 자신의 명상과 철학을 종합한 시집 《행렬》을 비롯 《광인》《선구자》《모래와 거품》《사람의 아들 예수》등을 발표했고, 1919년 가을에는 화집 《그림 20선》을 펴냈다. 조각가의 기법을 연상시키는 단순화된 드로잉들이 실린 이 첫 화집으로, 그는 동양과 서양, 상징주의와 관념주의, 형식의 전통과 관념의 내적 의미를 조화롭게 이끌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1923년에는 드디어 25년간 준비한 《예언자》를 출간했다.
지브란이 쓴 사랑과 진리, 아름다움의 시는 곧 현대영문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됐고, 타고르의 《기탄잘리》이래 동양에서 나온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시집은 20세기에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으로 기록되고 있다.
26가지 삶의 진리에 묻고 대답하는 '예언자의 노래'
이 시집에는 두 사람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예언자 알무스타파와 여자 예언자 알미트라이다. 이들은 오르팔레스라는 가공의 마을 사람들에게 사랑과 결혼, 슬픔과 기쁨, 고통과 죽음 등 26가지 삶의 진리를 이야기해준다. 알미트라가 진리를 말해달라고 청하면, 알무스타파가 각각의 질문에 대해 시로써 노래하는 형식이다.
지브란이 예언자의 입을 빌려 말하고자 한 것은 사랑, 기쁨, 고통, 슬픔 등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진리였다. 사랑은 환희의 절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처와 고통의 절정이기도 하다. 지브란은 물질세계의 제한적인 이원론을 거부하면서 진리는 결코 '있는 것'이 아니라, '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했다. '예언자의 노래'에는 이러한 초월주의와 블레이크를 연상시키는 신성,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그의 따뜻한 연민이 품어져 있다.
우리 시대의 예언자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지금 '예언자'가 다시 태어난 이유
현대의 우리는 끊임없이 갈망한다.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도시를 벗어나 내면의 소리가 들리는 은밀한 곳으로 떠나기를. 그런 우리에게 칼릴 지브란은 작은 배 한 척을 띄워준다. 무한한 바다와 하늘 사이를 떠돌며 자유의 정신을 만끽하도록, 그리고 본래의 맑은 영혼이 시작된 곳으로 높이높이 거슬러 오르도록.
얼핏 보면 그의 시와 그림은 현실과는 유리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오히려 현실 속에서 끝없이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린 아이부터 등이 굽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자에서 부유한 자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의 형상들이 지브란의 시와 그림 속에서 진리의 길을 찾는다.
탁월한 시인이자 화가, 철학자, 신비주의자인 칼릴 지브란. 그는 누구보다 인간을 사랑한,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구원을 나누고자 했던 '진정한 예언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