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계약직 행정사무 보조로 일하는 ‘나’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대학 시절을 떠올리며 시작되는 이야기로, 열정적이면서 연약한 시절에 겪었던 일이 지금의 시점에서 어떻게 다시 쓰일 수 있는지를 긴 호흡으로 차분히 보여준다. 우리를 휘감는 예술의 아우라를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운 방식으로 꿰뚫는 이 작품은 “새로운 예술사가 쓰이기 시작한 분기점에서, 이 소설은 젊은작가상 대상의 자리에 충분히 값한다”(문학평론가 강지희)라는 호평을 받으며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김멜라의 「나뭇잎이 마르고」는 ‘마음씨’라는 씨 뿌리기 동아리에서 만난 두 여성이 오랜 시간에 걸쳐 포개졌다 멀어지고, 또다시 포개지는 과정을 그려냄으로써 우리 사회의 가장 첨예한 이슈 중 하나인 ‘퀴어’와 ‘장애’ 문제를 김멜라 특유의 신비로운 문체와 부드러운 활기로 담아낸다. 김지연의 「사랑하는 일」은 ‘서로 사랑하는데 굳이 섹스까지 해야 하느냐’고 묻는 여자친구와 ‘애인이라고 밝히지 말고 친한 친구라고 해도 같이 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아빠 사이에 놓인 ‘나’를 통해 레즈비언이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고 인정받는 일의 지난함을 드러내면서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중심의 서사’를 써나가기로 결심한 이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사랑스러움으로 가득한 싱그러운 작품이다. 김혜진의 「목화맨션」은 세상의 잣대로 바라보았을 때는 쉽사리 수긍되지 않을 정도로 가깝게 지내던 한 임대인과 세입자가 각자의 상황에 맞닥뜨린 뒤 끝내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한 시절을 애틋하면서도 단호하게 그려내는 작품으로, 어떤 공간과 관계를 지나오면서 우리가 두고 온 것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박서련의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은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엄마가 뜻밖에 게임의 세계에 진입하는 과정을 박진감 있게 전개함으로써 여성혐오와 게임의 규칙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강화하는지, 그 견고하고 막강한 세계의 한 면을 펼쳐 보인다. 서이제의 「0%를 향하여」는 어린 시절에 독립영화에 매료된 뒤 그것이 비추는 작은 등불에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교차해 보여주는데,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빛이 어느 순간 주위를 압도할 만큼 강력해질 때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며 우리로 하여금 그 인물들 곁에 나란히 서게 한다. 한정현의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은 식민지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촘촘한 삶의 세목들이 압도적인 작품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인물들을 조명함으로써 현재까지도 유구히 이어지는 혐오의 역사에서 ‘사랑’과 ‘낙관’을 향해 걸어가는 이들의 선명한 자취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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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형, 선우은실, 오은교, 조대한 평론가가 2020년 한 해 동안 발표된 수백 편의 중단편소설을 읽고 토론해 선별하는 치열하고 지난한 작업을 함께해주었고, 이후에 소유정, 이소, 임정균 평론가가 합류해 최종 선고 작업을 맡았다. 그렇게 열여덟 명의 작가가 쓴 스무 편의 작품이 본심 심사위원 강지희, 박민정, 신수정, 이승우, 최윤에게 전달되었다. 본심에 오른 명단의 대다수가 아직 자신의 첫 작품집을 내지 않은 신예 작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본심은 열띤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각자 인상적으로 읽은 작품들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과 투표를 거쳐 수상작 일곱 편과 그 가운데 대상 한 편을 정하는 과정은 투표를 거듭하는 치열한 것이었지만 결과에 있어서는 흔쾌하게 합의에 이르렀다. 심사가 끝나고 보니 일곱 명의 수상자들 모두 젊은작가상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들이었다. 자신만의 주제를 꾸준히 천착해나가 이제는 유려한 경지에 이른 김혜진 작가를 비롯해, 흥미로운 서사를 촘촘한 밀도로 구성해내며 한 단계 더 발돋움한 김멜라, 박서련, 한정현의 약진이 눈에 띄었고, 신인 김지연, 서이제, 전하영의 탄성 높은 소설들도 놀랍고 반가웠다. 대상작인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기존의 예술이 어떤 인종, 나이, 젠더, 계급 등의 물적 조건을 교차하며 주조되어왔는지를 날카롭게 묘파해내며, 예술성을 둘러싸고 있던 모호한 아우라를 거두어내는 수작이다. 예술사 정전의 구성 요건을 메타적으로 검토하며 새로운 시대의 미감을 개발하는 지적인 작업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독자들에게 대상작을 비롯해 이 일곱 편의 수상작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 이 작품들을 읽어나가는 시간이 낯설고도 충만하기를 바란다. _‘심사 경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