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손끝 하나 대지 않고서 세상을 정복하는 것,
철학은 바로 아이의 장난이다
오후 세 시. 태양이 죽음처럼 뜨겁게 타오른다.
섬들은 안개 속에서 떠다니는 것만 같고, 어디선가 매미 냄새와 풀 냄새가 난다.
달콤한 낮잠을 잘 시간이고, 부른 배가 꺼지도록 연거푸 담배를 피울 때이다.
오후 세 시란 한여름처럼 지치고 나른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니체, … 라파엘 앙토방이 들려주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일화들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해서 철학이 그에게 다가왔는지 알게 된다. 《열세 살이 되었을 때는, 의사놀이를 하듯 철학 놀이를 하면서 개념들을 주무르고, 이런저런 철학 개론서들을 만지작거리며 사람들 앞에서 키에르케고르를 들먹이기도 했다. 또 우연히 먼지로 뒤덮인 옛날 책들을 발견하면 괜히 설레고 들떠서 부스럭거리며 두툼한 겉표지를 열어보곤 했다. 그때의 철학자들은 중독성 있는 담배이자 쓴 커피이며 달콤한 포도주와 같았고, 어쩌면 아이들이 더 빨리 나이 들고 싶어서 먹는 성장 호르몬제와도 같았다.》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이며 작가인 장-폴 앙토방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업고, 어려서부터 저명한 지식인들의 집단 속에서 특혜를 누리며 자란 환경 때문일지 몰라도 라파엘 앙토방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철학적 성향을 지녔다. 그는 현재 프랑스에서 철학과 현실을 접목시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철학자로 각광받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첫 작품 『오후 3시』에 대하여 이를 자전적 철학서라 불러야 할까? 철학적 성찰이 담긴 고백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그저 에세이라고 해야 할까? 장르는 분명치가 않다.
첫 담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방금 끓인 커피에서 이는 거품들…
젊은 철학자는 바닷가에서 아이를 목말 태운 채 산보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옛 여인을 회상한다. 그리고 세상의 기이함과 온유함과 혼란과 잔인함과 어리석음에 놀라워하며, 때론 비굴함과 냉혹함, 원한과 분노에 대해 자신의 솔직한 감정들을 드러내기도 한다. 뚜렷한 시간의 연계적인 흐름도 없고, 어떤 규칙이나 정해진 사유의 틀도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새로운 철학적 지평을 열어준다.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엄청난 비밀을 감추고 있는 자연의 이치와 신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들이 목탄 스케치처럼 재빨리 스쳐지나간다.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니체, 칸트, 사르트르, 장켈레비치… 저자는 위대한 철학적 스승들의 발자취를 따라, 마치 산보를 하듯이 우리가 보고 느끼고 사유하는 대로 삶을 바라보게 만든다. 때론 즉흥적이면서도 명확하고, 감성적이면서도 엄격하며, 우수에 젖은 슬픔이 깃들어 있는가 하면, 또 때론 생에 대한 환희와 아름다움이 담겨 있기도 하다. 분명한 사실은 이 글을 쓴 철학자는 감정과 지식 사이의 균형을 결코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은 아름답다. 그것 말고 구원은 어디에도 없다.
철학에서는 의문이 해답보다 더욱 본질적이며, 중요한 건 탐색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철학이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면 욕망의 대상은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사랑은 소유욕 때문에 희미해진다. 요컨대 플라톤의 말처럼, 사람들은 만족스러울 때는 늘 불평하고, 지혜로울 때는 철학을 논하지 않는다.
카뮈가 말했듯이 세상은 아름답다. 땅 가장 가까이에 다다랐을 때 태양은 눈부시게 빛나며, 최후의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삶에 대한 열렬한 갈증을 느낀다. 연인들은 역의 플랫폼에서 작별을 고할 때 서로를 가장 사랑하고, 우연처럼 루소는 죽기 바로 직전에 쓴 저서가 가장 괜찮았다고 한다. 니체는 진정한 기쁨은 고통을 깨닫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의사가 되려면 아파봐야 한다는 것. 또한 파스칼이 생각에 잠겨 읊조리듯 “진정한 삶은 근사하게 차려입은 연미복 속에 있는 게 아니라 학자의 허름한 옷 속에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익숙해질수록 심장은 더욱 느리게 뛰고, 반면 시간은 더욱 빨리 흘러간다고 했던가. 습관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일상의 적과 같다. 그러니 철학적인 정신을 가짐으로써만이 우리들 역시 니체의 경우처럼 가장 진부한 사건들에 놀라움을 느낄 수 있다. 철학이 삶의 이유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삶이 사유할 이유를 부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