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팬레터 중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봉투가 시커멓게 돼 있었거든요. 검은 바탕 위에 희미하게 회사 주소와 ‘후지 유이카’라는 제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겨우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원래 검은색 봉투에 흰색 잉크로 쓴 것인 줄 알았죠. 하지만 왠지 위화감이 느껴져서 자세히 봤더니 원래 검은 바탕이 아니었습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검다기보다는 진한 회색에 군데군데 깨알 같은 흰색 반점이 보였습니다. 저는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서 봉투의 표면을 돋보기로 확대해서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역시 그건 단순한 검은 바탕이 아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쌀알보다 작은 글씨들을 빽빽하게 적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 p.15
“제 얘기를 들은 매니저가 웃으면서 그러더군요. 인기가 많아지면 이상한 팬도 생기기 마련이라고요. 하지만 그 이상한 봉투와 사진을 보여 줬더니 그 역시 표정이 변했어요. 신음을 흘리며 ‘지금까지 이상한 편지들을 많이 봐 왔지만 이런 편지는 본 적이 없어.’라고 하더군요.” --- p.19
“리스크가 없으면 리턴도 없잖아. 보상 말이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란 말 알잖아. 길은 두 가지밖에 없어. 눈에 띄지 않게 무명으로 한푼 두푼 모으든지,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크게 성공하든지 말이야. 잘나가는 연예인의 생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건 알지? 너는 이 중에서 어떤 걸 고를래?” --- p.23
“변태는 말이야, 모두 지향점이 달라. 정상적인 사람들은 차이가 별로 없지만, 변태들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이탈되기 때문에 서로 이해를 못 하거든. 그러니까 동료는 만들지 않지. 이런 사진을 협력해서 만드는 변태가 두 명 있을 확률은 극히 적을 거 같아.” --- p.34
“정말입니다. 저는 사람을 사라지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투명 인간으로 만든다는 건가요?” “아뇨, 단순하게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뿐 아니라, 존재 자체를 없애 버릴 수 있습니다.” --- p.62
“손님이 식재료를 가지고 있다니, 묘한 광경이었겠군요.” “네, 저희는 가게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거든요. ‘죠즈비자르’는 그런 식으로 장사를 하는 레스토랑이었나 봅니다.” “그런 식요?” “손님이 가져온 식재료를 셰프가 즉흥적으로 요리하는 겁니다.” --- p.163
“치사토는 이 건물에서 나가지 않았어.” 아내는 뭔가 무서운 것을 본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다. “도로가 함몰된 건 조금 전이잖아.” “그게 아니라……. 여긴 어떤 식재료라도 조리해 주는 곳이잖아. 그게 무엇이든, 손님이 가져온 것이라면…….” 아내는 부들부들 몸을 떨기 시작했다. --- p.177
“꼭 그렇지만도 않아. 사람의 목숨이 개나 고양이의 목숨보다 가벼울 경우도 있다니까.” “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건 진실이야.” --- p.201
“그런데 여기서 반대의 가정을 해 봅시다. 즉, A를 거짓말쟁이라고 가정하는 겁니다. 거짓말쟁이인 A가 ‘B는 정직하다.’라고 했으니까, B는 사실 거짓말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거짓말쟁이 B가 ‘A는 정직하다.’라고 거짓말했으니까 A가 거짓말쟁이라는 가정이 모순되지 않습니다. 즉, A가 정직하든 거짓말쟁이이든 모순 없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전제에서 모순 없이 전부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전제가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