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경험론과 합리론의 혼란 속에서 적절하게 등장했고 이들을 정리했다. 형이상학 역시 칸트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확실히 이전과는 명백하게 다른 철학적 구조를 보여준다. 칸트 이전의 철학은 세상의 근원 물질이 무엇인지가 주제였고, 세상을 알게 해주는 근원적인 외부의 조건이 문제였다. 그러나 칸트는 이런 논쟁을 뒤집어서(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세상을 똑바로 알려면 ‘나’를 중심으로 바라보라고 가르쳤다. 어차피 신이 아닌 이상 세상 그 자체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이 우리에게 드러나는 현상만 알 뿐이다.
---「서문」중에서
칸트가 생각하기에 “내용 없는 사상들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들은 맹목적이다.”
---「 1장 천체와 물리를 알았던 철학자, 칸트, 27쪽」중에서
아니 대상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데 근거를 ‘나’에 두겠다? 이건 혁명이 아닌가! 그래서 칸트 스스로 자신의 이론적 작업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명명했고, 또 그럴 만했다.
---「 1장 천체와 물리를 알았던 철학자, 칸트, 22-23쪽」중에서
칸트는 철학에서 과학, 시사, 가정 문제에 이르기까지 주제를 불문하고 대화를 즐겼다.
이후 시간은 산책이다. 오후 3시 30분경. 날씨에 상관없이 산책을 했다. 그는 야외에서 대화를 나누면 입으로 숨을 쉬게 되어 건강에 좋지 않으리라는 별난 생각 때문에, 산책도 늘 혼자 했다. 워낙 병약한 체질인 칸트는 규칙적인 산책으로 건강을 관리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 유명한 칸트의 산책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아직까지 오르내리는 것이다. 철든 이후 죽을 때까지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걸었다. 마을 사람들이 칸트의 산책을 보고 시계를 맞추었으니 말해 뭐 하겠는가.
---「 1장 천체와 물리를 알았던 철학자, 칸트, 28쪽」중에서
칸트는 형이상학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이성의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기로 마음먹었다. 칸트는 이성이 하는 업무들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일인 자기인식을 하는 일에 착수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이를 위해서 하나의 법정을 설치하여 정당한 주장을 펴는 이성은 보호하고 근거 없는 모든 월권에 대해서는 권위자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의 영구불변의 법칙에 의해 거절할 수 있도록 요구할 것도 밝힌다. 이 법정이 바로 ‘순수이성비판’이다.
---「 1장 천체와 물리를 알았던 철학자, 칸트, 37쪽」중에서
칸트는 인간의 이성이 본성상 탐구하고자 하는 무제약자 혹은 신 혹은 완전성에 대한 탐구 열망 때문에 벌어진 형이상학의 싸움터를 정리하고자 법정을 세우고 비판을 시작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근대 과학이 물질적으로 인간의 완전성을 추구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면 형이상학, 즉 철학을 통해 인간다움의 완전성을 추구하려고 했던 것이 칸트의 기획이었을 것이다.
---「 1장 천체와 물리를 알았던 철학자, 칸트, 50쪽
칸트는 모든 경험 이전에 놓인 경험의 조건들을 ‘초월적(transzendental)’이라고 부른다. 초월의 개념은 칸트를 통해 크게 알려졌지만 이미 중세기의 철학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중세의 철학은 초월자를 ‘transcendentia’라고 했는데, 유와 종의 구분 한계를 넘어서며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제한 없이 타당한, 존재의 최종 근거 규정으로 이해한다. 즉 존재자를 생각할 때 언제나 미리 전제하는 것이 바로 초월적 성격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이데아(idea), 중세철학의 공통존재자(ens), 하이데거의 존재(Sein) 등은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존재하게 하는 근거들이다.
---「2장 『순수이성비판』읽기, 65-66쪽」중에서
칸트는 순수 이성의 본래적 과제는 “선험적 종합 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B19)라는 물음 안에 들어 있다고 했다. 이 물음을 해명하는 것을 “형이상학자들의 십자가”(『프롤레고메나』, 29절)라고 했을 정도이다. ‘선험적 종합 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역시 칸트 형이상학, 초월철학의 또 다른 표현이다. 칸트는 선험적 종합 판단을 통해 단순하게 사물을 분해하는 작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독립하여 선험적이면서도 지식을 확장하는 형이상학적 판단을 하고자 한다.
---「2장 『순수이성비판』읽기, 76쪽」중에서
칸트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 능력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또한 신, 우주, 영혼의 가능성이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그 가능성의 한계는 또 어디까지인지 알아보려고 노력한 철학자이다. 인간이 원하는 도덕적인 세계, 인간이 희망하는 합목적적인 세계, 미적 아름다움의 세계는 다음 『실천이성비판』과 『판단력비판』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2장 『순수이성비판』읽기, 184쪽」중에서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쓰기까지 합리론과 경험론, 과학을 두루 섭렵한 철학자였다. 특히 합리론은 칸트가 살던 독일 철학계의 기본 분위기였기 때문에 경험론보다는 합리론에 더 경도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젊은 날부터 당시 과학 논쟁에 적극 참여하면서 경험적 내용이 철학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짧은 글이다. 칸트를 읽기 전에 혹은 읽은 후에 한번 도전해볼 만한 고전이다.
---「3장 철학의 이정표, 189-190쪽」중에서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통해 일반 의지에 근거한 국가와 정부의 구성 원리를 제시한다. 이러한 일반 의지를 가진 시민은 계몽된 시민이다. 칸트가 원하는 인간 역시 계몽된 시민이다. 계몽의 시대를 살았던 칸트는 루소의 영향 아래 자유로운 인간의 비전을 꿈꾸었을 것이다. 『사회계약론』도 좋고 『에밀』도 좋다. 손에 잡으면 뭔가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직도 계몽이 진행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3장 철학의 이정표, 201-202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