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와 구입한 사진 열여덟 장을 앨범에 넣고 바라보았다. 간다 미라이의 지난 3년간의 궤적이 여기에 있었다. 그는 10년 전부터 기획사 소속이었지만 내 눈에 띈 건 3년 전, 그가 열여덟 살 때였다. 빈 구멍에 뭔가를 채워 넣듯 오모테산도에서 쇼핑을 하고 돌아오는 길, 꺅꺅 환성을 지르는 여자 중고생들 사이에 그가 있었다. 싱글싱글 웃으며 여학생들의 악수 요청에 응하던 미소년은 쇼핑백 일곱 개를 들고 있던 나를 시야 가장자리로 훑고 지나갔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그의 포로가 됐다. 애칭으로 간다 짱, 미라잉이라고 불리는 그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여학생들 뒤에서 계속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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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후 어쩐지 전체적으로 창백해진 사쿠라이 씨와 앞으로도 표를 공유하기로 약속하고 밤 10시에 헤어졌다. 내게 사례를 하고 싶었는지, 사쿠라이 씨는 ‘3초 바라봐 줘’ 부채를 큰 천 가방에 넣어서 주었다. 부엌에라도 숨겨두면 안 들키지 않겠냐며. 실제로 이 부채 덕분에 핫치가 나를 3초나 바라봐 주었다. 손가락으로 직접 가리키며 윙크까지 해주었다. 그 3초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나는 늘 밑에서 세 번째 인생을 살아왔다.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훨씬 많았지만, 나쁜 일에서 눈을 돌리고 웃으며 살면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했다. 난 영원 같았던 그 3초를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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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내게 ‘왜 결혼을 안 하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똑같은 빈도로 ‘왜 일하느냐’고 묻는다. 우리 부모님은 도쿄 도의 고액세납자에 속하고, 평생 빨아먹어도 다 못 빨아먹을 만큼 등골이 굵다.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쭉 좋아해 온 사람이 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스미타니 씨 정도 되는 사람도 짝사랑을 하는군요.” 나조차 손이 닿지 않는 사람이니까. 실제로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없다. 부모님의 이름을 꺼내면 어떤 곳에도 드나들 수 있고, 뭐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부모님 이름을 빌리는 건 부모님이 바라는 상대와의 결혼으로 직결되므로 나는 스물아홉 살 때 부모님과 결별했다. 결혼 따위 안 한다. 실은 이미 결혼했으니까. 정신과 몸이 일체라면 이미 결혼한 지 11년째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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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콘서트에 성공하고,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성공시켜 나가면 저희의, 그리고 팬 여러분의 꿈이 이루어질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부디 응원 부탁드릴게요! 꼭 와주세요!” “갈게!!” 하고 외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들의, 그리고 팬인 우리들의 꿈. 그건 아마도, 아니 분명 메이저 데뷔가 될 것이다. 거의 동기인 INAZUMA가 3년 전에 데뷔했다. 그 뒤편에서 계속 열심히 달려온 그들. 맛슈. 부디 그대로 계속 빛을 받으렴. 나는 소망했다. 그 푹신푹신한 모피가 달린 화려한 흰색 의상을 계속 입고 있으라고, 빛이 비치는 길을 걸어가라고. 그럼 널 길잡이 삼아 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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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핫치가 정말로 자신의 아들이라면, 하고 가끔, 아니 매일 몽상한다. 전철을 타고 출퇴근할 때. 계산대 업무를 볼 때.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 담배 냄새가 밴 빨래를 갤 때. 화장실 벽에 묻은 오줌 얼룩을 닦을 때. 욕실 배수구에 낀 털 뭉치를 끄집어낼 때. 자신의 몸에 들러붙은 진흙덩어리 같은 현실 속에서 만약 핫치가 아들이 되어 한 집에 산다면. 핫치가 아들이 된 것만으로도 일상의 풍경이 곱게 채색된다. 인생이 좀 더 반짝반짝 빛난다. 편차치 38의 ○○공업고등학교에 가든, 좀도둑질을 하든, 말과 행동이 난폭하든, 마시코는 분노고 뭐고 느끼지 않으리라. 오히려 그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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