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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인 더 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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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인 더 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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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09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34g | 134*195*17mm
ISBN13 9788954683159
ISBN10 8954683150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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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해보면 어김없이 식은 저녁식사가 테이블에 놓여 있어 그제야 겨우 K의 존재를 떠올린다. 단, 그것이 딱히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감각은 아니다. 물론 음식을 만들어주는 건 고맙지만 이 집 지하에서 아내가 기척 없이 생활하고 있다는 상상을 하면 왠지 마음이 불편해진다. 손도 안 댄 여름방학 숙제를 떠올릴 때처럼. --- p.32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조금 특이한 여자였지만 설마 집안에서 얼굴을 마주치지 않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때는 행복했다느니 하며 무책임하게 과거를 미화할 생각은 없다. 당시에는 우리도 지금보다 젊었고 모르는 것도 많았다. 좋든 싫든 사람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 p.53

증명이라고? 손가락이 멈춘다. 앞으로의 자기 행동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단 같은 게 있을까. 자신의 성실함을 호소하면 되는 걸까. 하지만 그 근거를 대라고 하면 곤란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증명이 아니라 신뢰를 바라는 것뿐이다. 나는 K에게 신뢰할 가치가 있는 성실한 남편이라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별로 자신이 없다. --- p.61

K와 만난 지 오 년이 된다. 분명 긴 시간을 함께해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녀에 대해 기억하는 정보는 그 시간의 수백분의 일, 아니 수백만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만약 ‘K와 보낸 가장 인상적인 하루를 가능한 한 정확히 떠올려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 p.73

억압에 의한 기억상실이란 말인가. 언어로 표현하니 과장되지만, 인간이 중요한 기억을 잃는 게 사실 그리 드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잖아도 인간은 매일 많은 것을 망각하면서 살아가고 무엇을 망각했는지조차 거의 잊어버리니까. --- p.88

문으로 들어서자 완벽한 암흑이었다. 시험삼아 손으로 눈앞을 가려봤지만 어둠의 농도는 변화가 없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이후 이토록 완벽한 암흑 속에 들어온 건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도시에 사는 한 어디서도 불빛은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 p.102

어둠 속에서 세계는 미확정된 카오스로 애매하게 떠다니다 내가 손을 댄 순간에야 비로소 확정된다. 가령 지금 내 손에 닿은 차가운 스테인리스 약통(이라고 생각되는 물체)은 내가 만지기 직전까지 프라이팬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껍데기에 싸인 성게나 심기 불편한 암고양이였는지도. 말하자면 나는 손이 닿기 전까지는 무엇을 탄생시킬지 스스로도 모르는 미숙한 창조주인 셈이다. --- p.103

“나는 대체 가능한 아무도 아닌 여자야. 아니, 그보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게 이 세상에 있을까? 모차르트가 죽었어도 음악사는 끝나지 않았고, 케네디가 암살당했어도 미국은 망하지 않았어. 하물며 나를 대신할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있지.” / “그렇지 않아. 당신이 사라지면 나는 상당히 곤란해. 엄청 슬프다고.” / 고마워, 그렇게 말해주니 기분은 좋네, 하고 K는 말했지만 곧바로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내가 사라지고 얼마 후면 당신은 나를 잊을 거야. 밋밋한 내 얼굴 같은 건 금방 생각도 안 날걸.” --- p.129

한번 시야에서 사라진 비는 우주가 끝날 때까지 다시 내 눈앞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니 시간아 멈춰라, 하고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은 초조함이 몰아쳤지만,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런 순간에 세계가 정지해버리는 건 시시하다. 그럼 나는 어떤 순간에 시간이 멈추기를 진심으로 바랄 수 있을까. 그런 순간이 과연 앞으로 내 인생에 찾아오기는 할까. --- p.139

“서로의 소리를 똑바로 듣지 않으면 안 돼.” K가 다정하게 말했다. “좀더 연습해서 다시 하자.” 나는 공포심으로 몸이 떨렸다. 통증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내가 다시 이 고통에 이끌려 어둠 속으로 돌아올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게 유일한 현실적인 감각이었다. --- p.166

어째서 인간은 새벽을 희망의 메타포로 말하고 싶어하는 걸까. ‘동트지 않는 밤은 없다’느니 하면서. 우울증 환자는 주로 동틀녘에 자살한다. 철도에 뛰어드는 인명 사고도 아침에 많이 일어난다. 밤이 영원히 새지 않으면 좋겠다. 실은 모두가 그렇게 바라는 건 아닐까. 지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 무대는 빛이 안 드는 지하실이다. 이 몸을 극한까지 어둠에 길들이고 싶다. --- p.175

결국 중요한 건 하나도 모른다. 우리의 결혼은 무엇이었을까. 서로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손에 넣고, 무엇을 잃었나. 그런 건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일지도. 오르페우스와 이자나기도 그럴 것이다. 세상에는 정답 없는 질문이 가득하다. 그런데도 답을 찾아야만 하는 질문이.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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