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영문학자,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 5남 3여 중 막내로 태어나 시오바라 긴노스케의 양자로 들어간다. 소세키의 작품 속에 반복해서 그려지는 사랑과 에고이즘은 버려진 아이처럼 자란 어린시절 영향이 크다. 처음에는 니쇼학사에서 한문학을 배웠고, 시류에 편승하여 1890년 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진학한다. 졸업 후 교사로 재직, 1895년부터 1년간 아이치현 마쓰야마 중학교 교사로 근무한 경험은 소설 『도련님』(1906)의 소재가 되었다. 1900년 문부성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약 2년간 영국 런던에서 유학한다. 하지만 일본인으로 영문학을 연구하는 데 회의를 느끼고, 동양인에 대한 멸시와 런던의 소음과 매연에 시달리면서 신경쇠약에 걸린다. 유학의 본래 목적인 영문학 연구보다 ‘문학’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주력하여 「문학론 노트」에 정리한다. 이 기록은 제국대학 영문학 강의를 모아 펴낸 『문학론』(1907)의 근간이 되었다. 소세키는 유학 전에도 양부와 얽힌 금전 문제, 부인 가네코 사이에 불거진 불화, 교사 생활의 환멸로 신경쇠약에 빠지곤 했다. 귀국한 뒤 잡지 「호토토기스」에 연재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소설가 소세키를 대중에게 알린 작품이다. 풍자와 해학이 돋보이는 이 작품과 결을 달리하는 『런던탑』『환영의 방패』는 현실과 몽상,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로맨틱한 세계를 그린 단편소설이다. 세 편 모두 1905년 발표되었다. 이후 『도련님』『풀베게』(1906)를 거쳐 1907년 제국대학 영문학 교수를 사직, 월급 200엔을 받고 매년 장편소설 한 편을 쓰는 조건으로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다. 『구비진소』(1907)『광부』『몽십야』(1908)를 거쳐, 전기 3부작『산시로』(1908)『그 후』(1909)『문』(1910)을 차례로 연재한다. 『산시로』는 순박한 청년의 사랑과 개인의 자립과 아집의 문제를 다룬다. 『그 후』『문』은 연애를 둘러싼 인간 심리의 명암을 집요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그 후』의 주인공은 친구에게 양보한 여자를 빼앗아 불륜을 저지르고, 『문』에서 불륜으로 맺어진 부부는 죄의식 속에서 쓸쓸하게 일상을 영위한다. 1910년 위궤양 치료 목적으로 방문한 온천에서 대량의 출혈로 죽음의 문턱까지 경험한 후에 쓰인 후기 3부작 『춘분 지나고까지』(1912)『행인』(1912~1913)『마음』(1914), 『미치쿠사』(1915)『명암』(1916) 등의 일련의 지식인 소설은 근대인의 에고이즘과 아집에 대한 소세키의 신랄한 비판을 엿볼 수 있다. 『명암』의 집필 중 지병이 악화하여 1916년 12월 9일 사망한다. 향년 50세였다. 소설 외 『문조』『영일소품』(1908) 등의 단편과 하이쿠, 한시, 그리고 일본 근대론을 피력한 강연록 『현대 일본의 개화』(1911) 등이 있다.
사무직으로 근무하다가 전직을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다양한 일본 콘텐츠를 접했다. 유학 중에 읽었던 원서들을 직접 번역하면서 번역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저자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독자가 공감하는 번역을 목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