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와 살기로 한 우리의 결정은 벼락같이 내려진 편이지만, 그 이유나 과정을 굳이 되짚어보자면 참 멀리도 거슬러 올라간다. 내 나이 스물두 살.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나는 별안간 고학생이 되었고, 동시에 처녀가장이 되었다. 부모와 조모, 아직 어린 세 동생까지, 나말고는 아무도 우리 집에 갑자기 닥친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다. 나는 과외, 학원 강사, 피아노 연주, 노래…… 투잡, 쓰리잡을 뛸 때도 있었다. 나는 당장 여기 막으면 저기 터지고 저기 막으면 여기 터지는 상황에 필요한 돈을 벌어야 했기에, 아직 학생 신분이라곤 해도 충분히 내 진로를 고민하고 준비해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처지가 아니었다.
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 받은 임금은 대기업 대졸 초봉에 비해도 훨씬 높은 편이었고 수입으로만 치자면 꽤 많은 돈을 번 셈이니 그나마 대단히 운이 좋았달까? 하지만 나는 근로계약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일했다. 나는 가끔씩 회식 자리에서 술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뺨을 맞았고, 심지어 오빠라고 부르라는 호의(?)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건방지다며 술잔을 날려도 호소할 곳이 없었다. 나이, 학번, 군번…… 이런 것들로 만나기만 하면 순식간에 줄 세우기가 가능해지는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이 그 줄에 포함되는 길은 그런 방식으로만 가능하다는 걸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해고를 각오하고 고소까지 하긴 애매한 성희롱은 일상다반사였다. 능력이 부족하면 무능해서 잘리고 능력이 뛰어나면 재수가 없다고 잘리기도 했다. 그런 일들은 대부분, 사용자는 해고를 원치 않는데 줄 세우기에 달인인 남성 중간관리자들의 공작으로 이루어졌다. 억울하게 해고를 당해도 ‘부당해고’ 싸움은커녕 내가 ‘노동자냐, 아니냐’를 놓고 다퉈야 했고, 그런 싸움마저도 바닥이 드러난 통장잔고와 월세보증금 때문에 중도포기해야 할 때가 많았다. 내 연봉이 얼마든 간에, 옆지기의 부양가족이 되기 전까지 4대보험 사각지대에 살았고, 실업급여 한 번 받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고백건대, 장기투쟁사업장에 연대하러 다닐 때 기나긴 그 투쟁의 처절함과 참혹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노조깃발을 갖고 있는 그들이 나는 부러웠다. 아이들이 생기니 그런 직장생활을 유지하는 것마저 쉽지 않았다. 나는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20대 땐 다른 사람보다 빨리 ‘프로’가 된 줄 알았던 나는 그저 흔하디흔한 미조직 비정규 여성노동자였고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처지가 열악해지는 불안정 노동자였던 것이다.
--- p.16~17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소식을 알 수 있는 정보화 시대, 우주를 탐사한다는 첨단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배가 기울면 무조건 갑판으로 뛰어올라가야 한다는 사실도, 구명조끼를 미리 입고 있으면 배에 물이 들어왔을 때 걸어서 탈출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상식도 없이 살고 있다. 이미 여러 사람이 언급한 바 있지만, 구미에서 불산가스 누출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 위험을 제일 먼저 알아차린 것이 사고를 일으킨 회사도, 국가도, 고명하신 전문가도 아니고 한 사람의 ‘농민’이었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마을 이장이 소가 침을 흘리는 것을 보고 긴급히 마을 주민들을 대피하게 하였으나 국가는 엉뚱한 기준치를 적용해 안전 판단을 내렸고 주민들을 복귀시켰다고 한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새벽부터 밤중까지 학교로 학원으로 돌아치고 있지만 먹고, 입고, 쓰고, 살아가고, 위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치지 않는다. 오로지 몸으로 살 때만 경험으로 배울 수 있는 지혜는 더이상 우리에게 없다. 과학은 오로지 시험지에 정답을 맞히기 위해서 필요할 뿐.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우리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며 살 수 없고, 그 이치대로 살려면 하늘의 무늬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시골에 살아보니 과연 그렇다. 똑같은 밭에 농사를 지어도 해마다 결과는 완전히 다르고, 똑같은 바다라도 작년에 준 것과 올해 주는 것이 다르다. 아무리 인문학 열풍이 불어도 사람의 무늬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매우 드물다. 사람과 마주 있어도 첨단 기계에만 코를 박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돕고 기대야 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일엔 매우 무능하다. 관계의 실패를 제도에 기대거나 어떤 명분으로 뒤바꾸는 일도, 자기 말만 들어 달라는 징징거림을 공론화라 부르는 일도,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떠드는 일도 이제는 너무 흔한 일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정치경제적으로 확고부동해 보이는 ‘체제’임과 동시에, 우리의 24시간과 모든 공간을 지배하는 ‘삶의 양식’으로서도 굳건하다. 주로 후자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탈정치화 경향을 보일 때도 무척 답답하지만, 주로 전자에 도전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우리 삶의 양식을 바꾸는 일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엔 때로 절망감을 느낀다.
--- p.124~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