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추구하며 난관을 극복한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계속 견디다가 마침내 맞서 싸우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한 달 전, 혹은 1년 전에 생각했던 문제가 어느 날 문득 작아 보일 수도 있다. 어쩌면 눈앞의 손조차 안 보일 만큼 어두웠던 곳이 어느 날 갑자기 어둡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때로는 어쩌다 보니 어려움을 잘 견디게 되기도 하는데, 그건 문제가 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변하지 않을 것들을 깨닫거나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정신적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 p.25, 「모험과 변화의 문턱」 플로라 S. 마이클스
나의 존재가 외부에 ‘어떻게 보일지’보다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집중하는 것, 재난·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가 갈구해왔던 리더의 모습이자 현재 정 본부장이 보여주는 리더십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가 그 어떤 위기보다 장기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역 컨트롤타워’의 부족을 탓하는 목소리가 없는 건 바로 이런 리더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은경이란 리더의 등장이 반가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 p.41, 「정은경, 본질에 집중하는 리더십」 박다해
우리는 절대로 그냥 한 사람일 수 없다. 언제나 여성인 사람, 잠재적 희생자, 배우자, 엄마여야만 하며 홀로 모험을 떠나고 싶다는 열망에는 위험 경고가 따라붙는다. 나는 혼자 도보여행을 떠나 돌아다닌다. 그러면 나 자신이 완전하다는 느낌이 들고 잠든 듯 평온해진다. 나의 순례가 남성의 순례보다 언제나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오래전에 받아들였다. 도보로 혹은 배, 낙타, 차 등을 타고 홀로 여행하기로 결정한 여성들은 각자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 위해 혹은 감수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해에 걸쳐 나는 무언가 다른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순례하는 방법이 하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 p.45, 「여성 순례자」 엘리자베스 올리버
사람은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몸을 통해 충만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 사람의 몸의 일부, 어떤 기관이 아닌, 전체로서 살아 있는 몸. 그 몸을 만날 때라야 내 몸의 전체가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날 수 있다. 전체로서의 몸은 오직 살아 있는 한 사람에게 속해 있을 때만 유효하다. 그렇지 않은 기관, 그저 하나의 기관은 한 사람에게 속하지 않은 죽은 기관처럼 기능할 뿐이다. 살아 있는 전체로서의 몸은 어떻게 입증되는가? 말을 통해서다. 말하는 사람의 몸이 그런 몸이다. (중략) 진짜 몸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우리는 먼저 말과 이름을 가진 인간으로 나타나고 그런 존재로서의 파트너를 마주해야만 한다.
--- p.54-55, 「말하는 사람의 몸」 이수련
“용감하게 혹은 겁내면서도 폭력에 반대하는 사람들, 그러다가 다치고 손해 보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습니다. 제가 혼자 기민해서 사회의 고통을 발견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고통에 공명하는 사람들이라 자연스럽게 영향받는 쪽에 가깝지요. 이를테면 노동운동가 김진숙 위원장,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인권변호사 나스린 소토우데 같은 사람들요. 저는 그냥 좋은 사람들에게서 발생한 생각들이 지나가는 파이프예요. 파이프에겐 파이프의 역할이 있다고 믿지만요. 튼튼한 파이프가 되고 싶다, 반복해서 결심하긴 해요.”
--- p.75, 「최선을 다한 다음 바통을 넘긴다는 마음으로: 소설가 정세랑」 최지은
카슨에게 바다는 ‘위대한 생명의 어머니’였다. 모든 생명이 시작된 곳. 시간, 계절, 이주, 삶과 죽음, 진화라는 주제가 연상되는 곳. 그는 밤에 바닷가를 즐겨 거닐었다. 한 손에 손전등을, 다른 손에 작은 검정 공책을 들고 자신의 관찰과 감각적 경험을 기록했다. 여자들은 집에서 아이나 낳고 다림질이나 하라는 핀잔을 듣던 시대에 카슨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 명석했던 그는 유명 대학에서 장학금을 타고 스승을 비롯한 출판인들과 끈끈한 우정을 맺으며 경력을 쌓았다.
--- p.85, 「레이첼은 침묵하지 않으리〉 조 이미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