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바로 그 초호화 사치품의 제국을 신비스런 베일 뒤에서 이끌어가고 있는 황제와의 인터뷰를 르포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사치품이라고는 하지만, 패션 혹은 모드(mode)라는 것이 인류문화의 도저한 흐름에 있어 그 정점을 장식하는 하나의 꽃으로 표출되는 무엇이라 볼 때, 천방지축 몰상식의 대명사로 흔히들 말하는 저급한 의미의 '사치'와는 그 차원부터가 다르다 할 수 있다. 자고로 21세기를 달리는 코즈머폴리턴 시민사회에서의 패션이란 일부 소수만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방식, 그 코드 자체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디까지나 시대의 흐름 속에서 과거의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가운데 짐슴과 차별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인 전망을 첨예한 미학으로 제시해 주는 창조성이 바로 그 안에 담겨 있기에, 패션은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중요한 화두이기도 하다. 패션 분야로는 단연 세계 최고의 수준과 규모를 자랑하는 그룹의 총수, 베르나르 아르노는 그런 점에서 오늘의 세계를 이끌어 가는 다른 여타 주인공들 못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더구나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쟁쟁한 패션 기업들을 고작해야 14년밖에 안 된 LVMH라는 그룹의 테두리 안에 복속시킴으로써 인류 역시상 유례가 없는 초호화판 대제국을 일구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든 그 장본인에 대해 호기심을 떨칠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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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는, 아마도 내가 LVMH를 통해 했던 일을 보다 작은 규모에서 흉내내려는 것 같습니다. 남의 모방심리를 자극한다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는 일이지요. 우리 일이나는 것이 워낙 가짜들에게 훤히 노출되어 있어, 이러한 경우를 꽤 많이 겪어왔습니다.
근본적으로 나는 피노의 구찌 행보에 대해 무척 회의적입니다. 사실, 하나의 럭셔리 그룹을 세운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 '진정한 호화고가산업 분야의 경제적 스타군단'인 기업들을 아우름으로써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의 브랜드가 그만한 위상을 갖추려면 다음 세 가지 요건을 겸비해야 하지요. 즉, 초시간성과 상당한 수준의 캐시플로(cash-flow), 장기간에 걸쳐 구축된 든든한 성장세가 그것입니다. 이러한 요건들을 두루 갖춘 세계적 브랜드들은 현재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입니다. 카르티에(Cartier), 루이 비통(Louis Vuitton), 페리뇽(Dom Perignon)도 그 중에 속하지요.
그러한 브랜드들만이 그 주변으로 진짜 그룹다운 그룹을 형성할 수가 있는 겁니다. 한데 내가 보기에 구찌는 그런 축에 속하지 못합니다. 구찌는 유행에 너무 귀속되어 있고, 빈약한 캐시플로에다, 그 역사 역시 뒤죽박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당초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인수할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단지 파트너십을 형성해서 그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려 했을 뿐이지요. 작금의 세계 경기가 유화적이다 보니 초심자들의 오류가 거의 다 용인되는 상황입니다만, 이러한 상황이 뒤바뀌는 날엔 모든 게 결판날 겁니다. 빈약한 기반 위에 섣부르게 일어서려고 했던 잔행이 럭셔리 그룹들이 호된 꼴을 당하고, 결국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될 거란 말입니다.
어쨌든 구찌의 대주주 중 하나로서 우리 LVMH는 이 기업이 망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비록 현재 채택되고 있는 노선에는 회의적이지만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도울 생각으로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구찌가 독립적인 기업으로 남아 있는 한, 보다 효율적인 발전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기업 자체는 물론, 주주들이나 직원들편에서도 최선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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