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또 같은 반이라니! 너랑 나는 진짜 운명이라니까?”
지수는 호들갑을 떨며 나기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 두 사람은 초등학교 1, 4, 5, 6학년 동안 같은 반이었다. 전체가 10반이었으니 대략적인 확률로 보면 1만분의 1의 인연이었고, 그것이 지수가 나기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이유의 거의 전부였다. 나기는 지수의 그런 친근감이 고마우면서 때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번까지 치면 6만분의 1 아냐? 우린 진짜 운명이다.”
“하하, 이렇게 된 거 도원결의라도 할까?”
나기의 재치 있는 답변에 지수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도원결의가 뭔데?”
“헐. 『삼국지』 안 봤어?”
“앞에만 좀 읽어 봤는데 내 취향은 아니더라고.”
“제일 초반에 나오잖아. 한날한시에 같이 죽자고 하는….”
“뭐야 그게. 나랑 동반자살하자고?”
“아니거든?!”
--- p.20~21
“지난 시간에는 태양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마저 해 보자. 태양은 앞으로 5억 년 정도 지금과 비슷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그 이후엔 어떻게 될까? 태양은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연쇄적인 수소 핵융합의 결과로 빛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밝아지고, 뜨거워진다. 그 결과 10억 년 안에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없을 만큼 뜨거워질 것이고, 50억 년 후 지구의 평균 온도는 500℃를 넘어설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태양 중심부의 수소는 점차 고갈될 것이고, 핵의 바깥 부분에서 핵융합이 일어나 별의 껍데기를 팽창시킬 것이다. 그렇게 팽창이 계속되면 100억 년쯤 후에 태양은 지금 밝기의 2배 정도인 준거성이 되고, 곧 더 거대한 적색거성으로 변한다. 그쯤 되면 지구는 팽창된 태양에게 삼켜지겠지만 어차피 그때까지 지구에 남아 있는 생명체 따윈 없을 테니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 p.70~71
주기율표에 관한 내용을 곱씹으며 모퉁이를 돌던 리나는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누군가와 부딪혔다.
“꺅!”
리나는 재빨리 균형을 잡았지만, 리나와 부딪힌 공위성 선생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앗… 주기율표… 아니, 죄송합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말까지 헛나온 리나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안절부절못했다. 상자까지 들고 있는 중학교 1학년 소녀와 부딪혀 혼자 넘어진 공위성 선생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애써 태연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리나가 들고 있던 상자 하나를 들었다.
“주기율표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나 보군.”
리나에게 목적지를 들은 공위성 선생은 앞서 걸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p.94
수영장에 다녀오고 며칠이 지났다. 화성관 1층 복도를 지나던 지수는 고양이 조각상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흰색 대리석으로 만든 고양이 조각상은 금색 실타래를 앞발로 굴리며 노는 모습이었다. 지수는 수영장에서 금슬과 지오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정확한 단어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고양이가 들어간 것만은 확실했다. 지수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공위성 선생이 어딘가 불편한 걸음걸이로 지수에게 다가왔다.
“…고양이를 좋아하나?”
“엇, 안녕하세요. 이게 그, 술에 취한 고양인가 그건가요?”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말하는 건가?”
“맞아요!”
--- p.142
‘내가 소행성이라면 지수는 태양이겠지.’
나기는 자신이 우주 저편으로 날아가지 않고 그나마 궤도 안에 있는 건 지수의 중력 덕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크고 강하고 늘 밝은 지수는 존재만으로도 언제나 눈에 띄었고, 사람들을 자신의 주변으로 끌어당겼다.
‘만약 지수가 없어진다면?’
나기는 한순간 태양이 없어지는 상상을 했다. 궤도의 구심점을 잃고 초속 20km의 속도로 흩어진 소행성들. 그중 몇몇은 다른 천체의 중력에 이끌려 갈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텅 빈 우주를 떠돌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도 4광년이 넘는 거리에 있으니, 초속 20km의 속도 따위는 정지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 p.152
“DNA 정보라고 해 봤자 CD 1장 정도밖에 안 되는데, 우리 행동을 전부 그걸로 설명한다는 게 말이 되냐?”
“진짜? 사람 유전자 정보가 그것밖에 안 돼?”
“사람의 DNA는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 네 종류의 염기로 되어 있고, RNA엔 티민 대신 우라실이 존재해. 46개의 유전자에 총 32억 쌍의 염기 서열이 있지만 아데닌은 티민, 구아닌은 시토신과 쌍으로 결합하니 한쪽 염기 서열만 알면 반대쪽은 자동으로 알 수 있어. 그럼 각 자리를 2bit(비트)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 전체 염기는 64억bit, 이걸 메가바이트(MB)로 환산하면 760MB 정도야. CD 1장이 700MB니까 대략 CD 1장이라고 볼 수 있지.”
--- p.179~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