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놀라운 특징 중의 하나는 우리 인간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고 세계가 동질적으로 변해감에도 불구하고 이런 우리의 차이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인간은 오늘과 내일, 현 세대와 다음 세대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작은 집단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진화를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삶의 모델'이 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는 현재 수천 명의 사람들과 끊임없이 접촉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하나의 지구촌에 살고 있다. 우리가 더 많은 경험을 할수록, 매스 미디어에 노출될수록, 그리고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할수록 차이는 더 커질 것이다. 즉 다양성이 새 천년의 질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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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론이 1980년대 초반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지금까지 수백 번 설명했지만, 다중지능 이론이 근본적인 두 가지 주장을 함의하고 있다는 것은 1997년에서야 깨달았다. 다중지능 이론은 두 가지 상보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우선, 다중지능 이론은 인간의 인지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나는 지능이란 인간의 정신에 대한 새로운 정의라고 생각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이성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 프로이트는 인간의 비합리성을 강조한 반면, 나는 잠정적으로 인간은 7, 8개에서 12개 정도의 기본적인 지능을 소유한 유기체라고 설명했다. 진화 덕택에 우리는 이러한 지적인 잠재력을 소유하게 도었으며 우리들 자신의 성향과 문화의 선호에 따라서 지능들을 결합하고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다른 종들의 지능과 우리의 지능을 비교해보는 일은 흥미롭다. 예를 들어, 쥐는 공간과 신체 운동 지능에서 인간을 능가한다. 반면 쥐가 자성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른 영장류, 특히 침팬지들의 다중지능 점수의 분포 양사은 인간과 거의 비슷하다. 인공지능과도 비교해보자.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논리적으로는 인간을 능가할지 모른다. 그리고 공간이나 언어와 관련된 부분에서 우리를 능가할 것이다. 하지만 기계의 대인 지능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개념이다. 종 전체의 정의는 인간 지능에 대한 하나의 기본적인 주장을 대변한다. 지능의 개인적 차는 또 다른 주장을 결정짓는다. 일반적으로 지능은 선천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똑같은 조합의 똑같은 지능을 소유한 사람은 없다. 결국 지능은 유전, 특정 문화와 시대 속에서 제공되는 환경과의 상호 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그들은 같은 모태 속에서 자라났고 같은 가정 환경에서 살아가지만 각자가 마주치는 사건들과 삶의 모습을 통해 서로 다른 사람으로 성장한다. 이것은 그들의 정신도 뇌도 서로 동일하지 않음을 암시해준다. 많은 일란성 쌍둥이들은 서로가 달라지려고 노력을 한다. 만약 인간 복제가 가능해진다 하더라도, 복제된 인간과 유전자를 제공했던 사람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그들의 지능은 다른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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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이론의 예기치 않은 결과 중 하나는 그 이론이 남용될 수 있는 방식이다. 여러 가지 지능들을 측정한다고 자처하는 간단한 검사 도구가 몇몇 있긴 하지만, 이들은 매우 언어적인 검사이며 때때로 한 지능에 대한 흥미를 그 지능이 발현된 기술로 혼동하고 있다. 이러한 검사는 기존 지능 검사의 단점을 7~8배로 배가시킨 것에 불과하다.
"평가 중심의 사고"에 도사리고 있는 또 다른 위험은 아동을 "언어적이다" 또는 "공간적이다"라거나 "전혀 음악적이지 않다", 심지어 "대인관계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낙인찍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활동을 포함하고 있고 단일 지능의 갸념을 넘어서 멀리 내다보는 다중지능이라는 개념에 아동은 흥미를 느끼고 있다. 또한 범주를 나누는 체계는 사람들이 생산적인 개인적 반성에 힘쓸 수 있는 방식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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