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케가 아파트로 찾아온 것은 새벽 1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소파 대신 내 침대에 걸터앉아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본다. “무슨 일 있어? 몰골이 왜 그래? 마치 내일 운전 학원에서 첫 고속도로 주행 교습을 받는 사람처럼 불안한 표정을 짓고 말이야.” --- p.13
“우리 회사에는 평사원이란 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입 사원 여러분은 지금부터 모두 ‘크리에이티브 파이터’입니다!” 입사식이 한창일 때 내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 찼다. ‘괜찮으려나, 이 회사….’ --- p.19
근처 신사에서 제례가 열리자, 그 주변으로 시끌벅적한 노점상이 들어섰다. 음침한 가게 주인이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파토스 구이를 굽고 있었다. “아저씨, 파토스 구이 두 개요!” “?00엔.” 가게 주인은 성가시다는 듯 얼굴에서 입 부분만 비죽거리며 꺼림칙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신사 옆 돌 벤치에 앉아 갓 구운 따끈따끈한 파토스 구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서글퍼지는 양질의 파토스였다. --- p.45
“이해돼요?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지금의 다쿠마 군은 껍데기예요. 영혼이 들어 있지 않은 그릇이지요. 크림이 들어 있지 않은 슈크림 빵 같은 푸석푸석한 상태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 슈크림 빵에는 슈가 파우더가 뿌려져 있나요?” “그게 요점이 아니잖아요!” --- p.127
“펭귄이 운영하는 바에서 따뜻한 술을 주문하는 바보가 어딨어!” --- p.139
그녀는 담배를 비벼 끄더니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게 뭐야? 완전히 달라. ‘두반장’이랑 ‘장 발장’만큼이나 다르다고.” --- p.189
갈란드 왕국의 성 아래 지하실에는 왕자가 철 가면을 쓴 채 갇혀 있다. 왕비 역시 철 가면을 쓴 채 갇혀 있다. 그 형제도 마찬가지. 갈란드 왕국의 왕도 철 가면을 쓰고 있고, 군인들도 모두 철 가면을 쓰고 있다. 갈란드 왕국의 국민들 역시 모두 철 가면을 쓰고 있다. 갈란드 왕국의 특산품은 ‘얼굴의 가려움을 없애 주는 로션’이다. --- p.207
“저희는 미소 된장 진흥회에서 나왔습니다! 사모님께서는 평소 빵에 무엇을 바르십니까?” 나는 조금 주춤거리면서 “마가린이나 잼을 바르는데요…”라고 말끝을 흐렸다. “사모님은 뒤처지셨습니다! 요즘은 빵에 미소 된장을 바르는 게 대세거든요!” 그러고는 안경을 쓰지 않은 남자가 종이봉투에서 팸플릿을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