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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장미의 심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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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장미의 심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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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276g | 128*188*20mm
ISBN13 979116737262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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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에게 처음 안겼을 때,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섹스가 그저 스포츠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루이는 전혀 다정하지도 않은 데다 내가 만난 인간 중 가장 오만하고 성격 나쁜 녀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난생처음 경험한 성의 황홀함과 견디기 힘든 인간성을 향한 증오가 동시에 들이닥쳐 나는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 pp.12~13

“고양이 좋아하는구나.”
“고양이 같은 거 질색이야. 근데 정착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잖아.”
“서로 닮아서 모른 척할 수 없는 거지?”
“무슨 뜻이야?”
“루이는 성격 나쁜 길고양이 같으니까.”
“아무튼 돌아갈게.”
나는 질투했다. 고양이를?
--- pp.39~40

루이는 몸을 떨더니 돌연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길 잃은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진심으로 그걸 겁내는 것처럼 보였다. 이 사람은 무엇이 그렇게 불안할까. 나는 무엇이 이렇게 무서울까. 우리는 지금 말도 못하게 행복한데, 어째서 이렇게 외로운 걸까. 내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진다. 땀이 나듯 쉽사리 눈물이 흘러넘친다. 나는 심장이 꿰뚫리듯 날카롭게 생각했다. 이 사람과 헤어지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 p.45

루이는 그런 부분이 매우 뛰어났다. 나와 다르게 어리광에 능숙한 것이다. 아무리 밉살스러운 말을 지껄여도 온몸으로 응석을 부리면 해롱해롱 맥을 못 추게 되고 만다. 고양이와 똑같다. 계산 따위 하지 않는다. 그저 타고난 매력으로 사람 마음에 들어온다. 그런 만큼 휘둘리면 더 고약하다. 해롱해롱한 다음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루이와 사귀면 해롱해롱과 안절부절이 거대한 파도처럼 교대로 찾아온다.
--- p.51

“밥을 주던 길고양이가 눌러앉았는데, 중성화수술을 안 해서 새끼를 계속 낳다 보니 두 마리가 다섯 마리가 되고 다섯 마리가 열 마리가 되고 그렇게 매년 끝도 없이 늘어가는 거. 지금 내 기분이 딱 이래. 내 안에서 네가 자꾸 증식해. 네가 나를 먹어치운다고. 넌 뺏을 뿐이지 아무것도 주질 않아. 이제 끝이야, 견디질 못하겠어. 이미 한계치를 넘었다고!”
--- p.71

“엄청 불행해졌을 때 전화해. 항상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고마워.”
나는 그의 다정함이 조금 불만스러웠다. 키스하고 싶으면 하면 될 텐데. 갖고 싶으면 루이처럼 앞뒤 생각 말고 피를 흘려서라도 쟁취하면 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일은 뜻밖이긴 하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루이의 독에 흠뻑 물드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 p.83

언젠가 섹스를 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건 더 이상 루이가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운명 지어진 채 만난 것이다. 만나자마자 서로의 몸을 원했다. 상대가 여자라는 이유로 고민도 하지 않고서. 우리에게 순애 기간 따위는 없었다. 루이는 끝없이 나를 원했고, 나는 원하는 만큼 주었다. 루이에게서는 늘 한시도 주체할 수 없는 절실한 욕망이 넘쳐흘러 그걸 받아들이는 사이 내게도 욕망이 옮았고, 몸을 섞을 때마다 욕망은 승화되고 그 자리엔 절실함만이 남았다. 그래서 서로를 안으면 안을수록 우리는 절실해졌다. 순애는 나중에 찾아왔다.
--- pp.103~104

루이는 네이비블루 더플코트를 입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네이비블루 더플코트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여자를 알지 못한다.
--- p.146

“이런 거 이제 그만하자. 진짜 그만하자, 쿠치.”
“응, 알겠어. 이제 그만하자.”
이제 그만하자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어느새 딱 달라붙어 있었다.
우리는 훌쩍훌쩍 울면서 서로를 탐했다. 종국에는 쾌락인지 고통인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런 후 집에 돌아가는 건 정말이지 괴로운 일이었다.
“이제 돌아가. 버스 끊기겠다.”
“가기 싫어. 여기 있고 싶다.”
“어디 도망갈래? 멀리 남쪽 섬에서 코코넛 같은 거 주우면서 살까.”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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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몽을 꾸는 것처럼 함께 취해 있는 기분.”
- 야마모토 슈고로상 심사평
삶을 뜻 모를 곳으로 휩쓸어가는 위력적인 사랑이 가져다주는 희열과 쾌락, 그에 대가처럼 뒤따르는 모든 고통스럽고 불완전한 마음의 굴곡들.
- 김재원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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