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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신춘문예 당선동화집

이경선 등저 | 정은출판 | 2024년 01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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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20쪽 | 153*225*20mm
ISBN13 9788958244936
ISBN10 895824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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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이 사라졌다
- 김아름

아침에 일어나보니 배꼽이 사라졌다. 세수를 하고 잠옷을 벗었는데 배 한가운데가 밋밋했다. 순간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왜? 무슨 일이야?”
욕실에서 씻고 있던 아빠가 말했다.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배, 배… 꼽이…….”
“뭐 꼽등이가 있다고? 지금 아빠 바빠서 이따 잡아줄게.”
아빠는 요즘 회사 프로젝트 때문에 잠이 부족하다. 어젯밤 회사 동료와 통화하는 것을 엿들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아빠와 단둘이 산다. 엄마는 내가 태어날 때 돌아가셨다. 아빠는 분유와 사랑으로 나를 키워주셨다. 나를 키우면서 일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을 아빠. 그런 아빠가 출근 전에 충격을 받으면 일을 제대로 못 할 거고, 그러면 승진도 못 할 테고, 당연히 재혼도 미뤄질 거다. 아빠가 어서 빨리 여자 친구를 사귀어서 재혼했으면 좋겠다. 그래, 배꼽이 사라진 사실을 비밀로 하자.
“먼저 출근하세요. 저는 숙제를 깜박해서 얼른 하고 학교 갈게요.”
“너는 열두 살이나 됐으면서 그런 걸 깜박하냐? 달력에 꼼꼼히 쓰라니까. 꼼꼼한 사람이 성공한다고. 아빠 먼저 간다.”

아빠는 그렇게 말하면서 양말을 검은색, 진회색 짝짝이로 신고 나갔다. 이제 어쩌지? 약상자에서 밴드를 찾아서 배꼽이 있던 부위에 붙였다. 밴드는 접착력이 없어서 금방 떨어졌다.
두 손을 들어 만세를 해보았다. 허옇게 드러나는 배 한가운데 아무것도 없는 모습이 마치 수염 없는 고양이 같다. 고양이에게 수염은 없어서 안 될 중요한 건데 나는 쓸모없는 배꼽이라니……. 그 쓸모없는 배꼽이 사라졌는데도 이렇게 어색할 줄이야!
사라진 배꼽을 꼭꼭 숨기려고 긴 티셔츠를 입었다. 바지 안에 티셔츠를 넣고 일부러 벨트까지 잠갔다. 학교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내 배만 보는 것 같았다. 특히 짝꿍인 마예지가 나의 옷차림새와 표정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요즘 미술학원에서 관찰하는 법을 배운다더니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샅샅이 나를 관찰했다.
“너 그 벨트는 뭐냐?”
마예지가 말하자 뒤에 앉은 재영이도 덧붙였다.
“민준이 우리 아빠랑 옷 입는 게 똑같네.”
“살 빠져서 그래. 신경 쓰지 마.”
나는 일부러 차갑게 말했다. 의심받지 않으려고 그랬는데 아이들은 갑자기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조심해야겠다. 그런데 하필이면 1교시부터 체육이라니…….
통통통. 강당 구석에서 눈에 띄지 않게 농구공만 튕겼다. 선생님께서 슛 연습을 하라고 하셨지만 레이업슛도 삼점슛도 하지 않았다. 재영이와 패스 연습과 드리블 연습만 했다.
“자, 이제 슛도 해봐. 시작!”
슛을 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건만. 마예지가 등 뒤에서 갑자기 떠미는 바람에 결국 내 차례가 되었다. 얄미운 마예지…….
선생님께서 슛 잘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는 틈을 타 아무도 보지 못하게 얼른 농구공을 던졌다.

“김민준! 너 배꼽이…….”
골대 밑에서 마예지가 놀란 토끼 눈으로 내 배를 가리켰다. 분명 내 뒤에 있었는데 언제 골대 쪽으로 간 거지?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나는 황급히 예지의 입을 막았다. 왼손 검지를 들어 비밀로 해달라는 신호를 보내자 예지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눈꼬리를 반달로 만들며 씨익 웃었다. 재밌는 걸 발견했다는 듯이 말이다.
“너희 둘이 연애하니?”
재영이가 짓궂게 놀려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지를 강당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진짜 봤어?”
“어떻게 배에 배꼽이 없어? 어쩐지 아침부터 수상하더라니.”
역시 마예지는 끈질기다. 전에 지우개 따먹기를 할 때도 내 지우개를 전부 따갔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자고 일어나니까 없어졌어. 이따 양호실 가서 물어보려고.”
“양호 선생님이라고 별수 있니? 배꼽이 없어졌다고 하면 인체 실험 당할걸?”
순간, 내가 어느 연구소에서 손발이 꽁꽁 묶인 채 파란색 액체가 든 주사를 맞으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끔찍하다.
“배꼽 스티커 우리 동네 문방구에 팔아. 그거 붙여.”
“그런 게 있다고?”
“물 묻혀서 붙이는 타투야. 요즘 다리 길어 보이려는 여자들이 배꼽 위에 붙이고 크롭티 입잖아.”
학교가 끝나고 예지를 따라서 문방구에 갔다.
“배꼽 스티커 다 팔렸다. 다음 주에 들어와. 너도 댄스 대회 나가니?”
주인 아저씨가 말했다. 실망한 나는 멍하니 필기구 진열대를 보다가 말했다.
“그냥 그릴까?”
“그래, 너 그림 잘 그리잖아! 일단 그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지? 하마터면 예지의 손을 잡고 방방 뛸 뻔했다.
“그런데 뭐로 그려? 너 물감 있어?”
“물감은 다 지워지지. 바보야? 내가 만화 그릴 때 쓰는 사인펜 빌려줄게. 물에 안 지워져. 좀 비싼 건데, 짝꿍이니까 특별히 빌려준다.”
웹툰 작가가 꿈인 예지는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지만, 사실은 내가 더 잘 그린다. 나도 미술학원에 가고 싶지만 차마 아빠한테 말하지 못했다. 아빠는 항상 바쁘니까.
예지와 은행나무 둥치로 갔다. 이 은행나무는 오백 년 된 보호수다. 왠지 이곳에 오면 신비로운 기분이 든다.
“너 손거울 있어?”
“한 번 빌리는데 오백 원.”
은행나무 뒤에서 예지의 손거울로 배를 보면서 배꼽을 쓱쓱 그렸다. 혹시라도 누가 올까 봐 가슴이 콩닥콩닥거렸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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