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죽은 내게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맛있는 음식에 대한 끝업슨 열망'이다. 난 맛이쓴 음식을 보고 심장박동수가 빨라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삶에 대한 정열이 있고, 에너지가 있고 유머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혼자라서 외롭고, 힘들고 속상하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을 위한 식탁을 차릴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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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스튜디오에서 만난 유진박은 작은 메모장에 틈나는 대로 낙서를 끄적여놓는다고 한다. 그 낙서장에서 발견한 가슴에 와 박히는 한 구절 'Everyday is saturday to me.'
'나에게는 모든 날이 토요일이다.' 토요일은 일을 가진 사람들에겐 '자유'라는 다른 이름이다. 꽁꽁 닫힌 창문을 확 열어제꼈을 때의 신선한 공기 같은 것.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는 가벼운 농담 같은 것. 지겨운 모임에서 빠져나와 쐬는 찬바람 같은 것. 그 토요일의 자유를 매일매일 느끼며 살 수 있다면...
누군가 하루에 열 번 이상 마음 속으로 참 좋다고 느끼고 살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니냐고 했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내게 지루하고 똑같은 일상 속에서 '참 좋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바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실컷 수다를 떨며 몇 접시의 요리를 비울 때, 그 때 밀려오는 행복감을 매일매일 주말처럼 느끼는 것이다.
보그지에 나오는 말라깽이 모델들은 어쩌면 호화로운 대리석 욕조에서 거품목욕을 하는 걸로 인생을 즐길지 모르지만, 나는 '맛있는 음식'을 찾는 데 인생을 걸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먹는 걸 좋아한다.
맛있는 걸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삶을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만든다고 믿는다.
먹는다는 행위는 섹시한 것이라고 믿는다. 맛있는 요리의 작은 차이를 찾아낼 줄 아는 것도 센스라고 믿는다. 막 쪄낸 뜨거운 고구마에 버터를 발라 우유와 함께 먹는 것과 대청마루에 앉아 식은 고구마에 총각무를 덥썩 베물어 먹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간장 게장의 게딱지에 밥을 넣고 비벼 먹는 것과 뜨거운 흰쌀밥에 매운 고추장 게장을 통째로 씹어 먹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고슬고슬 잘 지어낸 밥에 바삭바삭하게 구운 김을 얹어 먹는 것과 찬밥에 물을 말아 빨갛게 무친 깻잎 김치를 얹어 먹는 것이 언제 어떻게 어울리는지, 적절한 맛의 순간들을 찾아내는 즐거움이야말로 진짜 사는 맛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요리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먹는 걸 좋아한다는, 그 하나를 밑천으로 이렇게 용감하게 책을 펴내게 되었다. 혼자 있을 때, 남자 친구에게 점수를 따고 싶을 때, 엄마 아빠를 위해 솜씨를 발휘하고 싶을 때, 소문난 맛집의 메뉴를 집에서 즐기고 싶을 때, 감기에 걸리면 약국에서 처방을 받듯이 책을 펼치기만 하면 힌트를 얻어 쉽게 만들 수 있도록 내 작은 아이디어를 함께 나누고 싶다.
나는 비록 손이 잰 능숙한 요리사는 아니지만, 먹는 걸 즐기는 데서 행복해 할 수 있는 모 든사람들과 공감하고 싶다.
식탁 옆에 이 책을 놓아 두고 때때로 펼쳐 볼 때마다 그 순간이 행복해지길...
그래서 매일매일이 토요일처럼 가볍고, 자유로워지길...
Everyday is saturday to you.
1999. 초여름
최화정
누룽지를 잘 떨어지게 하려면 종이타월에 기름을 묻혀서 냄비나 솥에 바르면 누룽지가 잘 떨어진다. 밥알도 윤기가 잘잘 흘러 더욱 맛깔스러워 보인다. 밥에 윤기를 내고 싶다면 식초와 기름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면 된다. 단, 식초는 너무 많이 넣으면 신 맛이 나므로 주의한다. 누룽지를 노릇하게 만들려면 밥하기 전에 냄비바닥에 기름칠을 해둔다,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부어 쌀을 가볍게 인 뒤 물을 버린다. 맑은 물이 나올때까지 5~6번씩 반복해 먼지와 쌀겨를 깨끗이 씻어낸다. 30분간 물에 불렸다가 소쿠리에 건져둔다.밥솥에 쌀을 담고 물을 붓는다. 밥물이 끓으면 불을 줄여 약간 뜸을 들인 뒤 불을 끄고 10~12분 정도 뜸을 들여야 윤기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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