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자 이순신은 언제나 지독할 정도로 숫자를 파악하려 애썼고 일기에 일일이 기록했다. 때문에 그의 일기는 회계장부와도 같았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자신이 경영하는 5관 5포의 재무 및 조직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었고, 유비무환의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다음은 숫자에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 전선을 토괴土塊에 얹어 만들기 시작했는데, 목수가 214명이다. 물건 나르는 일은 본영 72명, 방답 35명, 사도 25명, 녹도 15명, 발포 12명, 여도 15명, 순천 10명, 낙안 5명, 흥양과 보성 각 10명이 했다. _ 《난중일기》, 1593년 6월 22일
- 군량에 대한 장부를 만들고 흥양 둔전에서 추수한 벼 352섬을 받아들였다. _《난중일기》, 1596년 2월 8일
- 재목을 끌어내릴 군사 1,283명에게 밥을 먹이고서 끌어내리게 했다. _ 《난중일기》, 1595년 9월 2일
*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순신은 굶주리는 백성과 군사들을 걱정하며,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면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전쟁 중에도 나라에 필요한 각종 진상품까지 생산하기도 했다. 《난중일기》에는 최고사령관이면서도 직접 밭에 나가 씨를 뿌리고, 소금 굽는 가마솥을 만들고, 미역을 따온 일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 1594년 3월 23일. 견내량에서 미역 53동(한 동은 말린 미역 10묶음)을 따왔다.
- 1594년 6월 7일. 무씨 2되 5홉을 심었다種菁.
- 1595년 5월 17일. 쇳물을 부어 소금 굽는 가마솥 하나를 만들었다.
- 1596년 1월 20일. 미시未時에 메주를 다 만들어 부뚜막에 들여놓았다.
그는 자신의 직위나 체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쟁과 노역, 굶주림에 지친 군사 및 백성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고된 노동을 했다.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함께 나누었다.
* 일본군이 조선 수군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대규모 공격을 해오기 전날, 즉 명량해전 전날 이순신의 일기 맨 끝에는 꿈 이야기 한 줄이 기록되어 있다.
“이날 밤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가르쳐주시길,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저렇게 하면 진다’고 했다.”
황당한 이야기라며 곧이듣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탁월한 영적 리더들의 삶에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한다. 성경과 불경 및 각종 신화와 전설의 주요 모티프이기도 하다. 여기서 ‘신인’을 칼 융의 심리학으로 해석해 보면 내면의 자기 자신이 상징화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이 꿈은 당시 이순신이 얼마나 절박했고 치열하게 고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얼마나 맑은 영혼을 갖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이 꿈 속 신인이 가르쳐준 전략전술을 실제로 펼쳤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없다. 다만 역사는 그가 배 13척으로 10배가 넘는 133척의 일본 해군을 대패시킨 기적 같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 해전 당일 일기에는 전투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날 일기 맨 끝에 “天幸天幸(하늘이 도왔다, 하늘이 도왔다)”라고 적었다. 이순신 자신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루지 못했을 승리라 여긴 것이다. 이 네 글자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진정한 모습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비밀 코드다. 바로 ‘진실로 하늘을 공경하고 두려워한 사람’. 또한 그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순결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살았는지 보여준다. 포기를 모르는 낙관주의자였고 오만하리만치 자기 자신을 존중했지만, 하늘을 두려워하며 하늘의 뜻에 따라 살고자 한 사람, 진실의 힘, 역사의 힘, 백성의 힘을 믿은 사람임을 보여준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