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과 변신을 거듭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대체로 '연속적인'존재로 남고 싶어했다고, 즉 과거와 이어진 존재, 과거로부터 생겨난 존재이기를 바랐다고, 그는 죽음 직전에 이르는 질병도 원하지 않았고 변형을 야기하는 추락도 원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사실 그가 무엇보다 두려워 하는 것은 바로 상황의 변화, 즉 꿈 속에서 생시로 새어나와 현실의 자아를 압도하고 자신을 스스로 원하지도 않는 천사 지브릴로 바꿔버리는 그런 변화라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 그렇다면, 적어도 이문제에 관한 한 그의 자아는 여전히 '진짜'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반면에 살라딘 참차는 '스스로 선택한' 불 연속성의 산물이고, '자의적으로' 역사를 거역한 그를 가리켜 '가짜'라고 부를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처럼 자아가 가짜이기 때문에 참차는 더욱 지독하고 심각한 허위를 - '악'이라고 해도 좋겠다 - 자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바로 그것이 진실이라고. 그것이야말로 추락과 더불어 그의 내부에서 활짝 열린 하나의 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한 용어들의 논리에 비추어보건데, 그동안의 온갖 변천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불변의 인간으로 '남고 싶어한다' 는 점에서 지브릴은 가히 '선하다'고 볼 수 있겠다.
--- p.
그러던 어느 날, 하루 일이 끝나고 여자들이 내시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그렇게 장난을 치고 있을 때였는데, 바알은 제일 어린 아가씨가 자기 손님인 식료품 장수 무사에 대해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인간! 예언자의 마누라들에게 푹 빠져 있다니까ㅇ. 그 여자들을 너무 미워해서 일므만 꺼내도 흥분할정도예요. 그 사람 말로는 내가 아예샤를 쏙 빼닮았대요. 다들 알다시피 그 여자는 거물 나으리의 애첩이잖아요. 나참.”
그러자 오십대 창녀가 불쑥 기어들었다.
“이봐, 그 하렘의 여자들 말인데, 요즘은 사내들이 온통 그 얘기뿐이란 말씀이야. 마훈드가 그 여자들을 가둬놓은 것도 당연한 일이지. 그런데 그것 때문에 사태가 더 심각해졌어.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온갖 상상을 하게 마련이니까.”
특히 이 도시에서는 더 그렇지, 하고 바알은 생각했다. 우리의 자할리아, 자유 분방한 도시, 마훈드가 그 규정집을 들이대기 전에는 여자들이 늘 화려한 옷차림을 하던 도시, 화제가 온통 성교와 돈, 돈과 섹스에 집중되어 있었고 또한 말만으로 그치지도 않았던 도시.
그는 제일 어린 창녀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자를 위해 흉내를 내주지 그래?”
“누구 말예요?”
“무사. 아예사가 그렇게 짜릿한 쾌감을 준다면 그의 아예샤가 되어주는 것도 좋지 않겠어?”
---p.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