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지금보다 5백 년 더 젊었을 때, 모든 사건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선명한 윤곽을 갖고 있었다. 즐거움과 슬픔, 행운과 불행, 이런 것들의 상호간 거리는 우리 현대인들과 비교해 볼 때 훨씬 더 먼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경험은 어린아이의 마음에 새겨지는 슬픔과 즐거움처럼 직접적이면서도 절대적인 성격을 띠었다. 모든 사건과 모든 행위는 특정한 표현을 가진 형식으로 정의되었고 엄격하고 변함없는 생활양식을 엄숙하게 준수했다. 인간 생활의 큰 사건들인 탄생, 결혼, 죽음은 교회의 성사 덕분에 신성한 신비의 광휘를 그 주위에 두르고 있었다. 이보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사건들, 가령 여행, 노동, 순례 등도 다수의 축복, 의식, 격언, 규약 등을 동반했다.---p.37
중세에는 여름과 겨울의 대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선명했던 것처럼, 빛과 어둠, 정적과 소음의 차이도 아주 확연했다. 현대의 도시는 그와 같은 순수한 어둠과 진정한 정적을 더 이상 알지 못하며, 단 하나의 자그마한 불빛이나 먼 곳에서 들려오는 외로운 고함소리의 위력을 알지 못한다. 이런 지속적인 대비로부터, 그리고 모든 현상이 중세인의 마음에 새겨놓는 다채로운 형식들로부터, 중세인들의 일상생활은 치열한 충동과 열정적인 암시를 받았다. 그런 치열함과 열정은 거친 광란, 갑작스러운 잔인함, 부드러운 정서 등의 동요하는 분위기 속에서 드러나는데, 중세 도시의 생활도 그런 격렬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어떤 한 소리는 언제나 바쁜 도시 생활의 시끄러운 소음을 제압했다. 방울들의 딸랑거리는 소리가 아무리 요란해도 그 소리는 다른 소리들과 결코 혼동되지 않았다. 그것은 잠시 동안 모든 것을 질서정연한 세계로 들어 올렸는데, 바로 교회의 종소리였다. 종소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상하면서 선량한 정령精靈의 역할을 했고, 그 친숙한 목소리로 슬픔 혹은 즐거움, 평온 혹은 불안, 집회 혹은 격려 따위를 선언했다. 중세의 사람들은 그 종을 ‘뚱뚱한 자클린(la grosse Jacqueline)’ 혹은 ‘롤랑의 종(la cloche Rolland)’ 등의 친숙한 이름으로 부르면서 그 종소리를 마치 이웃사람처럼 인식했다. 모든 사람이 그 종의 어조를 알아차렸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곧 바로 그 의미를 이해했다. 종소리가 아무리 남용되어도 사람들은 그 소리에 무심해지는 법이 없었다.---p.39
중세의 일상생활은 불타오르는 열정과 어린애 같은 상상력에 거의 무한정한 계기를 제공했다. 우리의 중세 전공 역사가들은 연대기들이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오로지 공식 문서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역사가들은 바로 그런 태도 때문에 가끔 위험한 오류에 빠진다. 공식 문서는 중세와 근대를 구분해 주는 저 미묘한 분위기의 차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공식 문서는 중세의 저 열정적인 애수를 망각하게 만든다. 다양한 색깔로 중세의 생활에 스며들어간 여러 가지 열정들 중에서, 공식 문서는 대체로 보아 탐욕과 호전성이라는 두 가지 열정만 기록했다. 중세의 법정 문서에 나오는 저 믿을 수 없는 폭력과 완고함(탐욕과 호전성의 뿌리)를 의아하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는 많은 열정들이 고루 침투해 있었다. 이런 열정의 전반적인 맥락을 파악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이런 갈등들을 용납하고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중세라는 시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연대기 작가들의 기록이 아주 소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실제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 아무리 피상적이고 또 사건들에 대한 보고에 오류가 많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연대기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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