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글씨를 휘갈겨 쓰시긴 했지만, 수녀님이 보내신 답장에는 그분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녀님이 수업을 하러 교실로 가던 중 복도에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도쿄에 간 김에 그분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분은 부자유스러운 손으로 출석부를 꺼내며 “올해 가르칠 학생들이에요. 매일 학생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며 기도하고 있지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몸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학생들을 생각하시는 수녀님의 모습에서, 엽서나 편지를 받으면 꼭 답장을 보내는 그분의 성실함을 엿볼 수 있어 저는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 p.28, '살아갈 용기를 주는 약' 중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에서는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를 합해도 전체 인구의 1퍼센트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가톨릭 신자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나 ‘가톨릭 신자라면 이렇게 할 텐데.’ 하는, 사회의 고정 관념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머니처럼 가톨릭과 무관한 사람들이 저 같은 가톨릭 신자에게 무엇을 원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 제게 생각할 기회를 주신 어머니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지금도 “그러고도 네가 수도자니?” 하고 지적하실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물으며 저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 p.39, '삶의 방식이 자신을 드러냅니다' 중에서
살다 보면 매일매일이 평범한 날의 연속일 때가 있습니다. 가끔은 저도 수도자답지 않게 ‘대체 무엇 때문에 살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사는 보람으로 가득 차서 무엇 때문에 사는지 물을 여유도 없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사는 보람을 애써 찾아야 하는 시기도 있지요.
어느 시기든 하느님이 주신 은총의 시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평범한 날들, 사소한 일들은 사랑을 더하는 것만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시간으로 변합니다. 양배추가 이파리 한 장 한 장을 키우는 것처럼 말이지요.
--- pp.76-77, '평범한 날을 소중한 날로 만듭니다' 중에서
저는 깊이 반성하며 그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도 “수녀님, 여기요.” 하고 학생이 부르면 종종 아래를 보거나 외면하고 싶어도 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이렇게 약속합니다.
“주님, 제 미소를 하나 바치오니 부디 어떤 영혼이든 주님 품 안에 받아 주세요.”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짓는 미소에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즉 상대방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데레사 수녀님, 이쪽 좀 봐 주세요.” 하는 사람을 수녀님이 절대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 p.91, '하느님께 ‘늘 웃기로’ 약속했어요' 중에서
저는 학생들에게 “예뻐지기 위해서는 돈이 들지만, 아름다워지는 데는 돈이 들지 않아요.” 하고 말하곤 합니다.
아름다움은 나이에 따라 생기는 고유의 품격입니다. 그러나 더 예뻐지기 위해 화장을 한다면, 다른 화장품을 써도 똑같이 눈썹을 그리고, 똑같이 눈 화장을 하지요. 결국 모두 똑같은 얼굴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목욕을 하거나 비를 맞기라도 하면 화장이 지워집니다. 씻기만 해도 바뀌어 버리는 것을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비를 맞아도 목욕을 해도 지워지지 않는 화장,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입니다.
--- p.113, '예쁨과 아름다움의 경계' 중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꽃입니다. 작은 꽃도 있고 큰 꽃도 있고, 빨리 피는 꽃도 있고 늦게 피는 꽃도 있고, 가게 앞에 알록달록 장식되어 누군가의 눈에 띄어 팔려 가는 꽃도 있고, 길가에서 우두커니 ‘꽃의 일생’을 마치는 꽃도 있습니다.
자기 자리에서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것이 꽃의 사명입니다. 다른 꽃과 우열을 가르지 않고, 어디에 있든 자신이 피울 수 있는 꽃을 가장 아름답게 피우는 것입니다. 물론 갈팡질팡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햇빛이 잘 드는 곳이면 좋았을 텐데.’, ‘바람이 덜 닿는 곳이면 좋았을 텐데.’, ‘좀 더 넓은 곳이면 좋았을 텐데.’ 하고 한탄할 때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생각에 마음을 빼앗겨 힘들고 불행하게 평생을 보내기보다는,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위의 시에서처럼 활짝 ‘꽃을 피우는 것’이 진정 아름답습니다.
--- pp.126-127, '한 송이 꽃으로 살아갑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