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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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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는 가족

: 세상의 모든 지식에 도전하는 가족 학교 이야기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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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450g | 148*215*20mm
ISBN13 9788958204886
ISBN10 8958204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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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작은 학교다. 학생은 4명. 어른 학생 2명, 청소년 학생 2명. 아, 그리고 강아지 학생이 1명 더 있다. 아주 산만한 학생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친구다. 쉬는 시간에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오락 담당이다. 어른 학생들은 편의상 대외적으로 교사의 직함을 가졌지만 사실은 학생이다.
우리 학교는 선생님이 많다. 학생보다 훨씬 많다. 교사 1인당 학생 수에서 세계 최고다. 대충 헤아려도 100명이 넘는다. 교사진도 최고다. 국내외 석학들이 즐비하다. 교사들 대부분 연륜이 깊다. 가장 나이 많은 교사는 2000세가 넘는다. 소크라테스와 공자 선생님이다.
우리 학교는 낡은 교과서를 쓴다. 책은 대부분 밋밋한 흑백이고 도표나 그림도 많지 않다. 수학은 유클리드가 쓴 『기하학 원론』으로 배운다. 사회는 루소의 『사회계약론』, 한문은 『논어』로 공부한다. 국어 공부로 『백범일지』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고, 영어로 『어린왕자』를 본다. 윤리와 사상은 플라톤의 『국가』로 공부한다.
--- p.7-8

겉으로 보기에 우리 집은 멀쩡했다. 나름 행복했고 큰 문제도 없었다. 두 아이는 학교에 잘 다녔다. 학교 공부를 곧잘 했고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 우리 부부도 그랬다. 밖에서 활발했고 제 역할에 나름 충실했다. 인생살이 통증이야 있었지만 겉은 멀쩡해 보였다.
문제는 그 ‘통증’이었다. 어느 날 질문이 찾아왔다. 성장통일까, 아니면 큰 병의 전조일까? 이미 깊어져 나오는 증상은 아닐까?
아이들의 가슴이 굳어가고 있었다. 부모가 전해주는 옛사람들의 지혜를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던 시절이 막을 내리고 있었다. 차갑고 딱딱해지는 방어막 뒤로 아이들의 마음에 달려드는 것들이 보였다. 욕망의 문화, 돈의 환상, 과대포장된 대학의 가치와 강요, 생각 없는 공부, 판단 없는 열심, 이웃이 빠진 성공 신화 같은 것들이 스며들고 있었다.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들이 아니었다.
--- p.16

어려울 것 없다. 90분이다. 90분만 있으면 누구나 가족 학교를 만들 수 있다. 거창한 건물과 교사와 커리큘럼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온 가족이 90분의 시간만 함께할 수 있으면 된다. 불변하는 것들과 접속하고, 살아가고 사랑하고 꿈꾸는 것들을 나눌 수 있으면 된다.
일반학교에 다니든 대안학교에 다니든 상관없다. 취업을 했든 창업을 했든 상관없다. 어디에 있든 학교 위의 학교, 공부 위의 공부를 세운다. 인생의 나침반을 세운다. 90분의 절반이 식사 시간이어도 좋다. 가족만이 누리는 특권 아닌가? CEO들이나 하는 인문학 조찬모임을 집에서 하는 셈이다. 지난 6년간 우리가 했던 모든 일의 궁극적인 실체가 있다면 이 90분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고 “진리의 실험실”을 운영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가족 학교 90분”이 어찌 그리 어려운지. 늦잠 자고 인터넷 하고 극장 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가족 학교 90분은 어렵다. 막상 시작하려면 일이 터진다. 시간이 없다. 사실 없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다. 절박함이다. 늘 급한 일에 쫓기면서 중요한 일을 방치하는 데 길들여져 있다.
--- p.31

우리 학교는 과감하게 가족들이 함께할 수 있는 독자적인 고전 읽기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쉽지 않은 시도였지만 우리에게 맞는 다른 대안이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만들어갈 원칙은 분명했다. 기본 틀과 방향이 있으면서도 언제든 자유롭게 확장할 수 있을 것! 사실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우리는 우선 역사를 따라갔다. 1년 동안 한달에 한 권씩 12개월 12권을 읽는 방식이다. 우선 인류의 발전과 변화에 따라 역사를 4막 12장으로 나누었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라는 일반적인 구분이 아니었다. 역사를 한 사람의 성장 이야기로 보았다. 특히 지적으로 영적으로 커가는 젊은이를 생각하며 시대를 나누었다.
I. 근원의 시대: ~ BC 500
II. 사상의 시대: BC 500 ~ AD 30
III. 시련의 시대: AD 30 ~ 1600
IV. 통합의 시대: AD 1600 ~ 현재
--- p.86-87

아들과 단 둘이 거실에 앉았다. 식탁이 되곤 하는 탁자에 마주보고 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둘 사이에 놓인 책들만 애꿎은 시선을 받고 있었다. 둘째 딸 아이는 다니던 초등학교를 마무리하느라 당분간 가족 학교와 초등학교를 병행하기로 했다. 아내도 하던 일을 마무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나는 어렵게 오전 시간을 확보했다. 밀린 일은 밤에 더 하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했다. 당분간 아들과 단 둘이 수업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고전 독서와 인문학의 찬란한 꿈이, 의욕만 앞선 아빠와 사춘기 아들의 어색한 조우 앞에서 맥을 못추었다. 아빠를 어려워하는데다 말수가 적은 편인 아들 녀석도 힘들어했다. 사실 당시에는 잘 몰랐다. 나중에 아들의 고백을 들었다. 한동안 많이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고.
--- p.101

우리 모임은 처음부터 부모가 함께 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았다. 함께 읽고 함께 참석해야 한다. 자녀만 시킬 거라면 더 훌륭한 선생님과 학원이 많다. 그리 가면 되는 일이다. 아빠 엄마 모두 참석하는 것은 어려워도 한 사람은 꼭 참석해야 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은 원칙이다.
자녀가 청소년이 되면 부모와 자녀의 대화가 줄어든다. 이야기할 시간도 없고 이야기할 주제도 없다. 모처럼 앉은 자리는 설교와 반항의 충돌이 되기 쉽다. “대화를 해보자”고 해서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고전 읽는 식탁을 만들면 도움이 된다. 배우는 기쁨이 생기고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위대한 텍스트가 사이에 있으면 자녀는 털어놓을 것이 생기고 부모는 (설교할 것이 아닌) 나눠줄 것이 생긴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같이 고민하면서 어깨를 토닥인다. 고전 읽는 가족 모임의 존재 이유가 여기 있다.
--- p.15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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