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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중고도서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장석남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05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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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 예정일 미정
쪽수, 무게, 크기 117쪽 | 128*205*20mm
ISBN13 9788932007366
ISBN10 8932007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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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나는 오래 된 정원 하나를 가지고 있지
삶을 상처라고 가르치는 정원은
밤낮없이 빛으로 낭자했어
더 이상은 아물지도 않았지
시간을 발밑에 묻고 있는 꽃나무와
이마 환하고 그림자 긴 바위돌의 인사를 보며
나는 그곳으로 들어서곤 했지 무성한
빗방울 지나갈 땐 커다란 손바닥이 정원의
어느 곳에서부턴가 자라나와 정원 위에
펼치던 것 나는 내
가슴에 숨어서 보곤 했지 왜 그랬을까
새들이 날아가면 공중엔 길이 났어
새보다 내겐 공중의 길이 더 선명했어
어디에 닿을지
별은 받침대도 없이 뜨곤 했지
내가 저 별을 보기까지
수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나는
떡갈나무의 번역으로도 읽고
강아지풀의 번역으로도 읽었지
물방울이 맺힌 걸 보면
물방울 속에서 많은 얼굴들이 보였어
빛들은 물방울들을 안고 흩어지곤 했지 그러면
몸이 아프고 아픔은 침묵이 그립고
내 오래 된 정원은 침묵에 싸여
고스란히 다른 세상으로 갔지
그곳이 어디인지는 삶이 상처라고
길을 나서는 모든 아픔과 아픔의 추억과
저 녹슨 풍향계만이 알뿐이지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中에서
--- p.
송학동1

계단만으로도 한동네가 되다니

무릎만 남은 삶의
계단 끝마다 베고니아의 붉은 뜰이 위태롭게
뱃고동들을 받아먹고 있다

저 아래는 어디일까 뱃고동이 올라오는 그곳은
어느 황혼이 섭정하는 저녁의 나라일까

무엇인가 막 쳐들어와서
꽉차서
사는 것이 쓸쓸함의 만조를 이룰
무엇인가 빠져나갈 것 많을 듯
가파름만으로도 한생애가 된다는 것에 대해
돌멩이처럼 생각에 잠긴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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