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우리는 주어진 현실 그대로 살아야 한단다. 먼 미래 그 언젠가 너와 내가 나란히 정원에 앉아 함께 마법을 부릴 수 있는 날도 오지 않겠누? 약속할 수 있단다. 하지만 지금은 네게 어진 재능이 뭔지 또 그걸로 뭘 할 수 있는지 알아야하지.”
엘로리가 불안해하며 얼른 말을 가로막았다.
“제 재능은 손을 마우스에 얹고 컴퓨터에 근사한 결과를 띄우는 거예요. 그게 무슨 소용이죠?”
엘로리는 돌멩이를 발로 찼다.
“전 마녀가 아니라 괴물이에요.”
모이라는 어떻게 해야 제일 잘 위로하는 것인지 몰라 주저했다.
“넌 혼자가 아니야.” (174쪽)
“그래요. 전 쓸모없지 않아요!”
모이라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엘로리에게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럼, 넌 절대 쓸모없지 않아. 다른 마녀들과 다르게 느껴지니? 얘야, 넌 그저 너만의 진짜 목표를 찾아 길 위에 서있을 뿐이란다. 그게 아주 중요한 다른 점이야. 네 주위엔 널 도와줄 사람들이 많단 걸 기억하렴.”
“전 목표가 있어요.”
“그래. 네가 열심히 싸워 이룰 목표여야 한단다. 넌 우리 마녀사회의 가장 중심에 서 있어. 그러니 아주 멋진 일을 해야 해. 엘로리, 네가 지금의 너이기 때문에 우리가 훨씬 더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단 걸 기억하려무나. 이 세계에서 컴퓨터로 이뤄지는 일들도 그건 바꾸지 못해.”
모이라는 자신의 생각이 손녀딸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는 걸 봤다. 이것이 진실이기를 빌었다. 때때로 마법은 이미 그곳에 있던 것의 뿌리를 더욱 깊이 내리게 그래서 그 뿌리가 퍼 올린 아름다움이 주변을 물들이고, 정원 전체를 아름답게 바꿔 놓았다. 그러려면 완전한 무(無)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마녀는 쉬운 길을 택하는 법이 없었다. (175쪽)
“엘로리 쇼, 들어봐. 잘 들어야 해. 너는 내 가족이야. 네가 태어날 때부터 넌 이 마녀사회의 일원이었고, 그러니 너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내가 너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일은 없을 거야.”
엘로리의 더듬거리는 항의도 모이라의 호통 앞에서 완전히 기가 죽고 말았다.
“그 누구도 나보다 더 우리 마녀들의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과거를 그 누구도 나보다 더한 기쁨으로 감사하진 못할 테고. 하지만 변화를 거부하는 이유가 두려움 때문이라면 그건 잘못된 거야.”
모이라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모이라가 엘로리의 손을잡았다. (273쪽)
“네가 간절히 원하는 걸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그저 편안한 곳을 찾아 숨어버리는 건 아주 쉬워. 나도 안다.” (275쪽)
“뭔가 심각한 일인 것 같은데요.”
쿵하는 요란한 소리에 두 사람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마이크가 이마를 문지르며 서있었다. 벽을 향해 곧장 걸어간 것이 분명했다. 마커스는 어른이 벽의 위치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세 가지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술이야말로 최고의 변명거리였다.
“문은 네 왼쪽으로 약 30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마커스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지만 마이크는 술 취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마이크가 마법에 걸렸거나 아니면 사랑에 빠져 멍청해졌다는 뜻이었다. 마커스는 재빨리 마이크의 머릿속을 조사한 뒤 한숨을 푹 쉬었다. 마법사들의 장난은 언제나 회복이 가능했다. 하지만 사랑의 열병은 회복이 불가능한 불치병과 같았다. 괜찮은 남자를 또 하나 잃다니. (311~312쪽)
“마녀가 되는 게 언제나 편리한 건 아니라우. 나도 네가 플루트를 부는 엘로리로 계속 남아있었으면 좋겠단다. 하지만 평범한 엘로리가 되는 데도 엄청난 마법이 필요한 거란다. 넌 마녀야. 그러니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진다고 그냥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게지.” (342쪽)
그녀의 영혼 속에서 기쁨이 소용돌이 쳤다. 할머니는 언제나 말씀하셨다. ‘마녀는 마법을 가지는 게 아니라 펼치는 거’라고. 이제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할 운명인지, 왜 자기 자신이 이런 새로운 마법의 재능을 선물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어떤 마녀가 돼야 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지금까지 엘로리의 마법은 자신의 약점에 기대어 자신이 믿어온 모든 것에 반대하는 쪽으로 자신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이제, 심지어 마녀가 아니더라도 모이라 할머니의 오른팔 역할을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녀는 타고난 조직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커스와 제이미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393~394쪽)
“넌 의무와 책임감에 대해 말했지만, 엘로리는 다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거야. 엘로리는 진실로 아름다운 마음을 지녔어.”
아마도 그 사랑의 햇살 몇 가닥이 마커스가 스스로 마음에 쌓아놓은 높은 요새를 뚫고 들어왔을 것이다. (482쪽)
모이라가 차를 가져오기 위해 잠시 컴퓨터에서 멀어졌다. 마녀들이 서로를 돕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니다. 가장 오래된 전통 중 하나같은 거지만 마녀 사회의 그 오랜 전통은 이제 주문 라이브러리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옳은 마녀에게 옳은 마법을 훨씬 더 쉽게 전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제 엘로리는 그 한없는 너그러움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있었다.
작은 선물들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것이야말로 마법의 심장이자 영혼이었다. 그리고 이제 마법 세계의 역사는 새로운 여정을 향해 펼쳐질 것이다. 모이라의 손녀딸이 배의 키를 잡았기 때
문이다. 오랫동안 기다린 보상은 그만큼 진하고 풍부한 법이다. (409~410쪽)
모이라는 자신의 마음속에 안개가 짙게 내려, 길을 끊어 놓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악, 음악을 들어야 한다. 그녀는 마음의 눈으로 엘로리를 볼 수 있었다. 몸을 부드럽게 흔들며 플루트를 연주하는 손녀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결계의식에 참여한 얼굴들과 그들이 전하는 사랑과 커뮤니티, 마법의 결합이 느껴졌다. 수많은 것들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잔잔한 물결처럼 일렁였다.
오! 오늘밤은 달빛 또한 황홀했다. 마치 모이라가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아주 천천히, 달빛이 안개를 녹이며 앞을 비췄다. 모이라는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반듯하게 누워 있는 듯 했지만, 그 모든 걸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고통의 기억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정원에서의 고통과 온몸을 엄습하는 이상한 느낌의 차가움도 느껴졌다.
모이라는 억지로 눈을 뜨고 검은 그림자로 뒤덮인 머리들과 환하게 빛나는 달빛을 쳐다봤다. 금방이라도 만질 수 있을 듯 가깝게 느껴졌다.
“여기가 천국인가?”
이런, 그녀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자신의 이마 위로 부드러운 웃음소리와 키스가 쏟아졌다.
“아뇨, 할머니. 여전히 우리랑 함께 계시죠. 이제 돌아오셨네요.” (448~4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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