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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상문학전집 : 감꽃과 주현이
중고도서

정영상문학전집 : 감꽃과 주현이

정영상 저 / 이대환 | 아시아 | 2023년 06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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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508쪽 | 150*210*35mm
ISBN13 9791156626312
ISBN10 1156626315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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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잘 수가 없는 날은
콩밭이며 보리밭이며
송아지처럼 뛰어다니던
소년이 되어 본다
형이 물려준 중학생복 저고리
(단추가 두 개밖에 달리지 않은)
우리 면 소재에선 그래도 귀했던
저고리를 입고
봇물이 많던 날
미꾸라지 잡으러 가던
열한 살 소년이 되어 본다
---「잠을 잘 수가 없는 날은」중에서

살아온 날 돌아보다가
살아갈 날 고개 저으며
돌 앞에 앉아 울고 싶은 날이 있다
하루는 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침묵의 돌이 꽃으로 피는 봄
돌 앞에 앉아 울다
돌에 이마를 짓찧고
피 흘리고 싶은 날이 있다.
---「돌 앞에 앉아」중에서

슬픔은 눈에 보이지 말아야 한다.
슬픔은 손에 만져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발가벗은 몸처럼 부끄럽게
보이는 슬픔이여
---「그릇에 대하여」중에서

체육시간이라 급한 김에 그만 누가 수도꼭지 잠그는 걸 잊어버리고 뛰어나갔을까 안동 복주여중에서 수돗물 떨어지는 소리 죽령 너머 단양의 내 방까지 들려온다.
---「幻聽」중에서

허리를 펼 때
보리는 아버지의 눈을 찔렀다.
눈물부터 먼저 고이는 보리밭
보리밭 위로 아내의 낮달이 떠가는 것을
아버지는 보지 못했으리
보리줄기 사이로 숨는
어머니의 낫질은 엉겁결에 보였겠지만
어머니의 낫끝에서
싹둑 싹둑 베어지고 베어져
반쪽만 남아 떠가는
배고픈 낮달은 보지 못했으리
허리를 펴는 아버지의 눈높이까지
夏至는 차오르고
꿩 소리 속에 무당벌레들은
하지를 찌르고 또 찔렀다.
며칠만 더 있으면 낮달도 저물리라
어머니의 육십 평생이
어머니의 손에서 베어져서 자취를 감추리라.
---「귀가일기 3」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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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어느 한 편을 읽어도 한 자 한 자 박아 쓴 장인의 손끝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는 본디 그림이 전공이기도 하지만 이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원고지 위에 글을 가지고 그린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빠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귓가에서 소곤소곤 들려주는 것 같은 나무와 벌레와 작은 것들에 대한 섬세하고도 따뜻한 얘기들은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 신경림 (시인)
그 사람 정영상을 회상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단어들이 필요하면서도 적확한 단어가 없다. 그는 물 같은 사람이고 동시에 불 같은 사람이었다. 가슴속에는 늘 출렁출렁 감정의 물결을 담고 있다가 누가 장난으로 돌팔매질 하나라도 하면 불같이 일어나 사랑하고 미워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 박원경 (교사, 정영상의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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