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넬라오스는 궁전 한쪽에서 헬레네를 찾아냈다. 그는 두 눈을 부라린 채 헬레네를 노려보며 칼을 뽑아 들었다. 금방이라도 칼로 목을 내려칠 것처럼 기세등등한 옛 남편을 보며 헬레네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눈물만 흘렸다. 그 모습을 본 메넬라오스는 쌓였던 분노와 증오보다 동정심이 앞섰다. 결국, 칼을 치켜든 메넬라오스의 팔은 힘없이 내려졌고, 칼은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메넬라오스는 헬레네에게 다가가 슬며시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헬레네는 메넬라오스의 품에 안긴 채 어깨를 들썩이며 애처롭게 흐느꼈다.
“아아, 헬레네. 당신을 잠시도 잊은 적이 없소. 지난 일은 모두 용서할 테니 그만 눈물을 거두고 나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트로이아아의 목마」중에서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옥좌에 앉자 영주 중 가장 연장자이자, 박식한 노인 아이깁토스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그가 첫 발언자로 나선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노인의 사랑스러운 아들이 오디세우스를 따라 트로이아로 출정했기 때문이다. 티포스라고 하는 이 아들은 창을 매우 잘 다뤘지만, 불행히도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최후를 맞았다. 그런데 노인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늘 비탄에 잠겨 살았다. 티포스 외에도 아이깁토스에게는 세 아들이 더 있었다. 그중 한 명인 에우리노모스는 구혼자의 무리와 어울렸고, 두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평소처럼 생사를 모르는 아들 생각에 눈물을 흘린 노인은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텔레마코스의 출항」중에서
그러나 제우스 신께서는 그리스군의 귀향길에 무서운 계획을 세우셨네. 왜냐하면, 트로이아 도성을 함락했을 때 우리가 저지른 일들이 신들의 노여움을 샀거든.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뜻밖의 재앙으로 죽음을 맞게 된 것일세. 가장 먼저 아테나 여신께서 아트레우스 집안의 두 형제 사이에 분쟁을 일으켰다네. 그래서 두 사람은 황급히 그리스의 전사들을 모조리 회합에 불러들였지. 그러나 온전한 절차를 밟지 않았고, 또한, 해 질 무렵이어서 병사들은 모두 술에 잔뜩 취한 상태였네. 거기서 두 형제는 귀국 시기를 놓고 격돌한 거야. 메넬라오스는 병사들의 귀국 요청에 따라 당장 바다에 군선을 띄우자고 했지만, 아가멤논은 반대했네. 두 사람이 날이 선 언쟁을 벌이자, 안 그래도 술에 취한 병사들을 동요시켜서 지독한 갈등을 일으켰네.
---「필로스에서 있었던 일들」중에서
“메넬라오스, 그리고 훌륭한 군주들의 자제들이여! 이제 고통스러운 기억은 잠시 잊어버리고, 만찬을 즐기세요. 지금부터 이 자리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게요. 제가 트로이아에 머물면서 날마다 고향 라케다이몬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이었어요. 그때 트로이아의 거리에서 한 남자와 마주쳤어요. 그 남자는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고, 피부는 마치 채찍을 맞은 듯 시뻘건 상처로 뒤덮여 있었죠. 그런데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너무나 놀라 전 할 말을 잊었어요. 맙소사. 그는 바로 이타카의 군주 오디세우스였어요. 거지나 도망친 노예처럼 변장했지만 전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지요.
전쟁이 한창인데 트로이아 도성 한복판에서 그리스군의 장수를 만났으니 제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그분 또한 많이 놀라셨겠지요. 하지만 그분은 현명하게도 저를 교묘하게 피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끈질기게 그분을 따라다니면서 변장을 하고 트로이아 도성 안까지 들어온 연유를 물었죠. 그러자 그분은 자신이 트로이아 성을 빠져나가 그리스 진영으로 무사히 돌아갈 때까지 자신의 정체를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제가 신들의 이름으로 맹세하자, 오디세우스는 그제야 트로이아의 군사 동향과 내부사정을 파악하기 위해서 잠입했다고 밝혔죠. 이후 그분은 트로이아에 대한 고급 정보를 잔뜩 수집하여 무사히 그리스 진영으로 돌아갔답니다.”
---「스파르타에서 있었던 일들」중에서
오디세우스는 고향을 생각하자 갑자기 그리움이 사무치도록 밀려와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가 고향에 돌아갈 일을 생각하며 행복한 상상에 젖어 있을 때였다. 에티오피아에서 연회에 참석했다가 돌아가던 포세이돈이 오디세우스를 발견했다. 포세이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아니, 이럴 수가!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다른 신들이 그를 도운 것이 틀림없구나. 내가 에티오피아에 가 있는 동안에 말이야. 게다가 벌써 스케리아섬에 가까워졌구나. 저곳은 오디세우스가 오랜 방황과 고난을 끝내도록 예정된 장소인데,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벌써 고난을 벗어나게 할 순 없어. 그를 위해 준비한 고난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 말이야.’
포세이돈이 삼지창을 높이 치켜들자 갑자기 사방에서 천둥이 울리며 파도가 거칠게 일기 시작했다. 어둠이 하늘로부터 내리 덮이고 폭우가 쏟아지며, 물결이 사납게 요동쳤다. 이내 밤이 내려와 하늘과 바다를 캄캄하게 덮어씌웠다.
---「오디세우스의 뗏목」중에서
키클롭스는 배가 부르자 방금 짠 염소젖으로 입가심을 하고는 동굴 속 양들 사이에 몸을 길게 뻗고 드러누워 곧장 잠이 들었습니다. 나는 치가 떨려서 허벅지에 숨겨두었던 날카로운 칼을 뽑아 당장 그놈의 가슴을 찔러 죽이고 싶었소. 하지만 동굴 입구를 막아놓은 커다란 바위가 생각이 나서 참았습니다. 거인이 죽어버리면 우리도 동굴에 갇혀서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죠. 우리는 그날 밤, 동굴에서 탈출할 궁리를 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아침이 되자 그놈은 잠에서 깼습니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중에서
‘오디세우스, 당신이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갈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그것은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궁전으로 내려가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령에게 신탁을 받아오는 일입니다. 그는 하데스에 있는 수많은 영혼 중 유일하게 인간의 이성을 간직하고 있어요. 페르세포네가 그에게 은총을 베풀어 죽어서도 여전히 예언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나는 저승세계에 가서 신탁을 받아오라는 말에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고난을 헤쳐왔지만, 이번 일에는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목놓아 울고 싶은 심정뿐이었죠. 나는 넋두리하듯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살아있는 내가 어떻게 저승세계로 갈 수 있단 말이오? 그 어떤 인간도 산 채로 배를 타고 저승으로 들어갔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소. 게다가 어느 누가 나를 그곳으로 안내할 수 있단 말이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