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어네스트 베커의 관점을 통해 스티브 잡스의 삶을 단계별로 살펴보면서, 그의 삶이 무한성을 추구하는 우주적 영웅성의 ‘오이디푸스 프로젝트’였음을 밝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삶이 버려짐의 트라우마, 자기 중심적인 나르시시즘을 거쳐 인류의 문명에 기여하는 우주적 영웅성을 보여주므로, 그의 삶 전체를 ‘오이디푸스 저니’의 전형으로서 제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의 삶의 여정이 비극적인 탄생과 그것에 의한 불안과 고통, 영웅으로의 추대, 추방과 속죄 그리고 마지막에 구원에 이르는 오이디푸스 왕의 신화적 삶의 여정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p.23
본 글은 현실의 삶에서 절망하고 좌절하고 삶의 의욕을 잃고 있는 이들이, 자기 내면의 근원적인 욕망과 공포 그리고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스스로 얻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통해 삶의 고통과 의미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즉 운명의 힘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갈지 알지도 못한 채, 언제나 앞길을 막아서는 온갖 역경을 헤치며, 잠시도 쉼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우리 인간들의 지난한 삶의 여정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얻고자 함이다. ---p.25
오이디푸스나 스티브 잡스가 부모로부터 버림을 당했음을 알았을 때 받은 충격의 근원적 공포는 죽음에 대한 공포라고 추정된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런데 부모로부터 그것도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핏덩어리일 때, 버림받았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가혹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베커는 아이들의 초기 경험의 모든 것은 출현의 불안, 지지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홀로 서는 것, 무기력하게 놓여지는 두려움을 회피하려는 시도 그 자체로 보았다. 인간은 대부분 어린아이일 때 “부모가 나를 두고 어딘가로 가버리거나, 일찍 돌아가시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처음 접하게 된다. 그것이 대상 분리의 공포이다. 하물며 부모가 “자의적으로 나를 버리다니!” 그것은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일이다. 이처럼 인간은 보편적으로 사랑하는 가장 가까운 이들과의 이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공포에 대한 반응은 스스로가 가치 있고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증과, 자기의 나약한 점을 위장하려는 수많은 성격의 갑옷을 입는 것으로 나타난다. ---p.50
그렇다면 잡스는 왜 이렇게 통제에 집착하는 특이한 성격을 갖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베커의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아이는 힘, 의미심장함, 자기 가치에 대한 기본적 의미를 느끼게 해 주는 방어들을 확립해 가면서 절망과 공포들을 피한다. 그것들은 아이의 삶과 죽음을 아이 자신이 통제하며, 아이가 의지를 지닌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가고 행동하고, 유일한 자기 방식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리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처럼 잡스는 자신이 통제하며, 스스로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해야만, 알 수 없는 근원적 절망감과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p.60
다시 말하면 인간은 자기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유한한 몸을 가지고 삶의 의무라는 원죄를 안고 태어났고, 버려짐의 공포에 휩싸여 죽음을 의식하게 되며,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견고한 성격의 갑옷으로 자기를 둘러싸면서, 특별함으로 스스로를 포장한다. 이러한 유한성의 인식과 더불어, 인간은 광대무변한 우주에 자기 존재의 흔적을 남겨 자기 영속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무한성 추구라는 또 다른 본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자신의 딜레마가 타자들의 딜레마와 서로 섞이면서 복잡한 인간의 문제를 증폭시킨다.
베커가 다루는 영웅성의 프로젝트는 명쾌하게 정리가 안 되어 혼란을 준다. 어떨 때는 자기중심의 오만한 영웅성이요, 어떨 때는 무한히 영속하는 우주적 영웅성으로 설명된다. 본 글은 이러한 베커의 영웅성의 성격을 구분하기 위해, 그가 사용한 두 개의 영웅성 프로젝트를 명쾌하게 구분 정리하고자 한다. 그중 하나는 앞 장에서 다루었던, 자기가 신이 되어 타자를 자기중심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자기의 나르시시즘적인 영웅성을 강조하는 세속적 영웅성으로서의 ‘자기원인 프로젝트’이며, 또 다른 하나는 본 장에서 다루는, 자기의 피조물성과 유한성의 죽음을 인정하고, 무한성을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우주적 영웅성으로서의 ‘오이디푸스 프로젝트’이다. 이것은 본 연구자가 브라운과 베커의 개념의 의미를 확대한 것으로서, ‘오이디푸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왕이 고통스런 속죄의 과정을 거치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 구원을 얻는 과정을 담아낸 것이다. ---p.153
잡스는 진정 키에르케고어가 말한 ‘유한성과 무한성의 종합’을 이룬 삶을 살았다. 실제적인 삶에서 많은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인류의 삶의 변혁에 크게 기여하여 부와 명성을 누렸고, 또 한편으로는 그의 삶에서나 제품을 통해서나 현실이라는 유한성에 안주하거나 갇히지 않고, 세속적인 욕망의 소유욕이나 과시욕에 빠져 삶을 거짓되게 살지도 않았다. 그리고 시대를 앞서 가는 최고의 창조적인 제품을 만들어 세상 사람들을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러면서도 젊은 날 경험했던 히피의 자유롭고 순수한 영혼을 잃지 않았고, 끊임없이 무한성을 향해 비상하면서 이 우주에 흔적을 남기고자 하였다. 그의 궁극적 관심은 무한한 창조 활동으로 존재의 의미에 우주성을 획득하는 것이었으며, 그의 무한성 추구는 그의 삶에 진정성을 부여하였고, 드라마틱한 삶의 여정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하는 방향타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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