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기도는 소원을 나열한 목록과는 거리가 먼, 근본적으로 예배 행위에 해당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모든 필요를 그분께 의지하며, 우리의 무가치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표현 수단이다. 따라서 기도의 모든 측면은 다 예배 행위다. 기도에 요청이 포함되는 이유는 기도와 간구와 감사함으로 아무 걱정 없이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아뢰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우리가 그분의 은혜와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해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하늘의 산타클로스가 아닌 주님이자 시혜자요, 우주의 통치자로 바라본다. 참된 기도는 간구를 할 때조차도 순전한 예배의 의미를 지닌다.” - 2장 ‘기도는 예배다’ 중에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말은 “하나님의 행위를 촉구하는 일종의 탄원서에 해당한다. 이 간구를 비롯해 다른 기도들 역시 동사로 시작하는 헬라어 문장 구조로 되어 있다.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소서”,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뜻이다. 각각의 기도에는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라는 문구를 모두 덧붙일 수 있다. 이러한 기도는 정중한 요청으로, 하나님의 종들이 충정어린 마음으로 그분께 간곡히 탄원하는 것을 뜻한다. 동사의 형태가 모두 수동태인 이유는 우리가 무엇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나서 주시기를 간곡히 애원하는 의미다.” - 4장 ‘기도는 탄원서다’ 중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는 알라딘의 램프를 여는 마법의 주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사실, 예수님은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아무 생각 없이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주문만 반복하면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러한 태도는 기도를 한갓 종교적 미신이자 공허한 주술로 전락시킨다.” - 5장 ‘기도는 능력이다’ 중에서
“히스기야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움을 알았다. 보위에 오른 지 14년밖에 안 되었고, 나이도 서른아홉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에서 죽음에 직면하자,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과 씨름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이것이 생명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에 어찌 일치한단 말입니까? 저는 주님의 가장 신실한 왕들 가운데 한 사람이온데 제 통치기간이 이렇게 짧게 끝나게 되었나이다. 이것이 주님의 약속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어떻게 이것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히스기야는 생명에 관한 일반적인 약속을 뛰어넘어 자신의 상황에서 생명 연장을 간구해야 할 특별한 이유를 발견했다.” - 6장 ‘기도는 호소다’ 중에서
“오늘날과 같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교회의 결속을 촉구하는 전쟁의 함성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이 기도는 “제자들의 기도” 가운데서 가장 간결하면서도 가장 포괄적이다. 우리는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기도를 통해 성령께서 말씀 사역에 능력과 축복을 베푸셔서 그리스도의 원수들을 제압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우리는 사탄의 세력이 궤멸되게 해달라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이 모두 구원받을 때까지 은혜의 나라가 계속 확장되게 해달라고, 이 세상의 체계와 그 부패한 유혹에서 더욱더 멀리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