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하고 기발한 특수작전 현대적인 특수부대는 2차대전 당시 영국에서 시작했다. 전쟁 초기 수세에 몰린 영국이 비정규전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한 특수작전국[SOE]과 코만도(Commando) 부대가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독일 해군 전함 티르피츠(Tirpitz)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생나제르(Saint-Nazaire) 항의 건선거를 파괴한 채리엇 작전(Operation Chariot), 보르도 항구를 공격한 프랭크턴 작전(Operation Frankton), 철도교를 폭파하여 독일군 군수지원을 차단하려 한 할링 작전(Operation Harling), 독일군 레이더를 탈취한 바이팅 작전(Operation Biting) 등 2차대전 당시 다양한 특수작전을 밝힌다. 영국군뿐만 아니라 독일군의 에방에마엘 요새(Fort Eben-Emael) 기습작전, 이탈리아 해군 잠수특공대의 유인어뢰 공격 등도 소개한다.
표적을 확보하라 미군은 ‘이라크 자유 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을 통해 테러위협을 완전히 없앨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대는 서서히 무너져갔다. 미군에 의해 점령된 이라크가 4세대 전쟁의 무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군은 알-자르카위(al-Zarqawi)와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같은 ‘고가치표적[HVT]’의 체포 또는 사살을 목적으로 한 작전에 주력하게 된다. 이러한 작전이 현대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차대전 당시 크레타에서는 SOE 요원들과 현지 레지스탕스가 힘을 합쳐, 독일 점령군 사령관 크라이페(Kreipe) 장군을 납치하기도 했다. 체코에서도 현지 총독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Heydrich)를 암살했다.
특수부대는 만능이 아니다 특수작전이 항상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우수한 자원이 모였음에도 작전 주체 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작전계획도 부실하여 결국 재앙으로 이어진 어그리먼트 작전, 파나마 침공 당시 노리에가의 탈출을 막으려 한 니프티 패키지 작전, 그레나다 침공 시 네이비 실의 실패 등 특수부대를 투입하고도 실패로 끝난 작전 등을 소개한다. 특수부대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취약한 지휘통제체계, 부족한 장비, 타군의 협조 미비 등 작전이 실패할 여지는 많이 있다. 여러 특수작전이 실패한 이유와 그로 인해 얻은 교훈을 밝힌다. 작전계획은 될수록 단순하게 하고, 예비용 장비를 반드시 휴대할 것, 합동훈련을 실시한 경험이 있는 부대하고만 실제 작전을 함께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특히 특수부대가 할 수 없는 임무가 있다면 할 수 없다고 솔직 명료하게 지휘부에 알려야만 한다. 통상 정규부대 출신이 많은 지휘부는 특수부대가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어떤 일을 할 수 없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이러한 실패를 바탕으로, 미군 내의 모든 특수작전을 총괄하고 실질적인 지휘권과 작전통제권을 가진 통합조직인 미 특수작전사령부[USSOCOM]를 창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