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송은 1981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 포커에 입문한 후, 1994년부터 세계 프로 포커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1994년을 시작으로 세계 프로 포커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그는 1997년 세계 포커 대회(World Series of Poker)에서 리밋 홀덤 부문 세계 챔피언에 올라 금팔찌와 상금 39만 7천 120달러를 받았다. 같은 해에 명예의 전당 포커 대회 챔피언십 이벤트의 노리밋 홀덤 부문에서도 영예의 챔피언에 올라 1997년 한 해에 리밋과 노리밋을 모두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지금까지 세계 대회를 비롯해 메이저 포커 대회를 23회나 우승했으며, 이는 월드포커랭크닷컴(www.worldpokerrank.com)의 기록으로 증명된다. 10만 명이 넘는 포커 선수 중 메이저 포커 대회에서 20회 이상 우승한 사람은 세계를 통틀어 10명 안팎이며, 한국인으로서는 케빈 송이 유일하다.
케빈 송은 세계 포커 무대에서 활동하면서도 평소 한국 도박 문화의 현실과 그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한국에 건전하고 올바른 도박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조국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에 불타 현재 국내에서 다양한 활동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19시간에 걸쳐서 진행되었던 첫날 시합은 마지막 아홉 명을 남겨 두고 휴식 시간에 들어갔다. 그날 저녁 7시에 다시 아홉 명의 결승전 진출자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여전히 프랑스의 이안 란빈이 칩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다. 라스베거스에서 열린 세계 포커 대회 역사상 가장 자주 상금을 받고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지닌 베리 쟌스톤, 전년도 챔피언 헉 시드가 그 다음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에릭 사이델이라는 라스베거스의 거물이 버티고 있었다.(중략) 당시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세계 대회 출전 3년 만에 가장 상금이 많다는 첫날 시합과 마지막 날 시합 중 첫날 시합을 우승했으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이날 시합은 세계 대회 리밋 홀덤 역사상 처음으로 상금이 백만 달러가 넘는 의미 있는 대회였다. 나는 챔피언으로서 세계 포커 대회 우승을 상징하는 금팔찌와 39만 7천 여 달러를 받았다. 1997년 그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금액이었다. -1장 「세계적인 프로 포커 선수가 되기까지」 중에서(p. 25)
대부분 사람들은 낮은 포켓 페어를 단순히 셋트라이를 노리고 가야 하는 핸드로 생각하지만, 플랍에서의 운을 바라지 않는 나는 물론이고 프로들은 다르다. 포켓 페어의 숫자가 높고 낮음을 생각하기 전에 여러 명과 싸울 때의 스몰 포켓 페어는 상대 누군가는 더 높은 페어를 맞출 확률이 높아지기에, 낮은 포켓 페어로 셋트라이를 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프로들은 헤즈 업 싸움으로 갈 때 상대가 포켓 페어가 없다는 판단이 들면 레이즈를 하여 프리플랍이나 플랍에서 승부를 본다. 그 이유는 상대가 페어를 들지 않고 높은 카드 두 장을 가졌을 경우 플랍에 페어가 맞을 가능성이 27%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서, 당신의 핸드가 이길 가능성이 70%가 넘는다. -3장 「케빈 송의 실전 포커 노하우」 중에서(p. 124)
포커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포커 실력이나 기술이 아니라 돈을 관리할 줄 아는 능력이다. 뛰어난 실력은 두 번째 요소이다. (중략) 게임에서 이기고 있는 사람은 무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고 있는 사람은 무리한 공격으로 본전을 찾으려고 한다. 포커에서 가장 무서운 상대는 지고도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다. 진정한 프로 선수는 엄청난 돈을 잃고 있으면서도 자세나 표정이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3장 「케빈 송의 실전 포커 노하우」 중에서(p. 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