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312g \| 15322420mm
ISBN13	9788984140271
ISBN10	8984140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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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이종미

중앙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이탈리아 유럽 디자인 학교(Istituto Europeo di Design)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 『백만년 전에』『뻐꾸기의 딸』등의 이탈리아 동화책과 『생쥐 아가씨와 고양이 아저씨』에 그림을 그렸으며, 발랄하고 경쾌한 상상력으로 어린이들의 세계에 즐겁게 펼쳐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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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벌써 이슥해졌습니다. 이제 고슈는 자기가 첼로를 켜고 있는지조차 헷갈렸습니다. 얼굴은 새빨개지고 눈에는 핏발이 선 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요. 그 때 누군가가 뒷문을 톡톡 두드렸습니다.

"호슈냐?"

고슈는 멍하니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지금까지 대여섯 번쯤 마주친 커다란 얼룩 고양이였습니다. 얼룩 고양이는 고슈의 밭에서 딴 설익은 토마토를 끙끙대며 들고 와 고슈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아이고, 힘들어라. 이거 나르는 것도 제법 힘드네."

"뭐라고?"

고슈가 묻자, 얼룩 고양이가 말했습니다.

"이거 선물이에요. 드세요."

그 순간 곳는 낮부터 꾹꾹 눌러 왔던 울화통을 한꺼번에 터뜨렸습니다.

"누가 너한테 토마토 가져오랬어? 네까짓 녀석이 가져온 걸 내가 먹을 것 같아? 게다가 그 토마토는 우리 밭에서 난 거잖아. 뭐야, 아직 익지도 않은 것을 따다니! 지금까지 토마토 줄기를 갉아먹고 망쳐 놓은 녀석이 바로 너지? 썩 꺼져. 이놈의 고양이야!"

그러자 고양이는 어깨를 둥글게 구부리고는 실눈을 뜨고 싱글거리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화내시면 몸에 안 좋아요. 그보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새 주시면 어때요. 들어 드릴테니까."

"건방진 녀석! 감히 고양이 주제에."

첼로 연주자는 화가 나서 이놈의 고양이를 어떻게 혼내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자요, 부담 갖지 마시고 어서요! 저는 선생님의 음악을 듣지 않으면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답니다."

"저, 저, 저, 건방진 녀석 같으니!"

고슈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지휘자처럼 발을 쿵쿵 구르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좋아, 켜 주마."

고슈는 무슨 속셈인지 문을 잠그고 창문도 몽땅 닫고는 불까지 껐습니다. 그러자 음력 스무 날을 넘긴 달빛이 방안으로 고요히 흘러 들어왔습니다.

"뭘 들려 달라고?"

"트로이메라이요, 낭만파 음악가 슈만이 작곡한."

첼로 연주자는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손수건을 쭉 찢어서 자기 귀를 틀어막았습니다. 그리고는 폭풍같은 기세로 <인도의 호랑이 사냥>이라는 곡을 켜기 시작했습니다.

--- pp.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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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초월하여 일본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사랑 받는 작가, 일본 판타지 어린이 문학의 큰 줄기, 미야자와 겐지는 처음 작품을 발표했을 당시 문단이나 독자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다. 파격적인 발상과 풍부한 환상성을 포괄한 작품이 너무나 낯설었기 때문이다. 겐지가 죽은 뒤 사람들은 마침내 그의 작품이 내뿜는 광채에 주목하게 되었고, 겐지 문학 세계의 매력에 눈을 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미야자와 겐지 붐을 일으키고 있다. 겐지 작품에 대한 독후감은 대부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말로 할 수는 없지만, 읽고 나서 아주 강한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감동은 매우 익숙한 감각이면서도 때로는 강렬한 불안이나 뜻밖의 기쁨이 되어 온 몸을 휘감는다고 한다.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들은 발표작이나 미발표작 모두 오랜 기간에 걸쳐 개정되고 개작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작품수나 완성년도가 확실하지 않고 내용이나 표현도 다채롭다. 그중에서 <늑대 숲, 소쿠리 숲, 도둑 숲>은 <新版 宮澤賢治 童話全集>(전12권/岩崎書店 刊)에서 9편을 뽑아서 최대한 원문을 살려 번역했다. <늑대 숲, 소쿠리 숲, 도둑 숲> 겐지는 이 작품의 자필 광고문에 "사람과 숲의 원시적인 교섭에서 자연의 순위(順違) 양면이 농민들에게 안겨준 오랫동안의 인상입니다. 숲이 아이들이나 농기구를 숨길 때마다 사람들은 '찾으러 가겠소' 하고 외치고 숲은 '오시오' 라고 대답했습니다." 라고 썼다. 늑대 숲은 아이들을 이끌고 숲으로 가서 즐겁게 놀게 해주고, 그 사례로 좁쌀떡을 받고, 그것을 부러워한 소쿠리 숲의 산도깨비는 농기구를 숨겨 자기도 좁쌀떡을 달라고 조른다. 맨 처음 자연과 인간의 더없이 즐거운 교감, 옛날 사람들이 왜 이렇게 이상한 이름을 지었는지,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을 즐겁게 들려준다. <밭 가장자리>의 개구리들은 길게 늘어선 옥수수를 보고는 부스스한 머리털에 이빨이 70개, 망토를 여섯 겹이나 걸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개구리는 토끼 귀는 하늘까지 닿고 돼지코는 나팔같고 사람은 머리에 손이 열여섯 개나 달려 있다고 한다. 개구리가 땅에서 올려다보는 시선에 작가는 우스꽝스럽고 이상하고 엉뚱한 표현을 덧붙인다. <겐쥬 공원숲>에서 겐쥬는 남들이 볼 때는 바보 같지만 아름다운 푸른숲을 가꾸어 수많은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며 자랄 수 있도록 한다. 나무가 없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마음이 메말라지고 인간다움을 잃는다. 일반 상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심오한 덕성(德性)의 결과를 깊이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공원숲을 지켜온 겐쥬네 가족의 따뜻한 마음에 세상은 사랑으로 지탱되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첼로 켜는 고슈>는 만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판타지와 현실이 조화된 걸작이다. '샛별 음악단'의 첼로 연주자 고슈는 실력이 별로라서 늘 지휘자한테 꾸지람을 듣는다. 그런데 밤마다 얼룩고양이, 너구리, 뻐꾸기 등 동물들이 찾아와 함께 첼로 연습을 한다. '고슈'란 프랑스어로 '서툰'이라는 뜻인데, 미야자와는 직접 첼로를 배우기도 하고 작사 작곡도 하는 등 음악을 사랑했다고 한다. <쳇쥐>, <흥쥐>, <새상자 선생님과 후우 쥐>는 잘난 척하거나 얄미운 쥐나 개구리 같은 작은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재미있는 우화이다. <은행 열매>는 은행 열매의 여행을 서정적으로 그렸다. 이 작품들은 환상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일찍이 독자 자신이 경험했던 감각을 생생하게 일깨움으로써 리얼리티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일관되게 흐르면서 수많은 생명체가 서로 사랑하고 하나의 우주를 형성하는 세계, 곧 이상향의 세계를 끝없이 추구하고 있다.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세계관, 생명의 소중함과 그 고귀한 연대를 찬미하는 우주관이 미야자와 겐지 문학의 바탕이며 일본 어린이문학의 명맥을 잇는 젖줄인 것이다. <늑대 숲, 소쿠리 숲, 도둑 숲>은 미야자와 겐지가 남긴 많은 작품 가운데 생명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깃들인 작품 9편을 가려 뽑은 것으로, 새롭게 소개하는 작품도 있고 또 예전에 우리 나라에서 소개된 것을 최대한 원문을 살려 다시 번역한 것도 있다. 예전에 소개된 작품을 다시 옮긴 것은, 빼어난 당시 시인이었던 그의 아름답고 절제된 문장들이 살아있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미야자와 겐지의 신비스럽고 독창적인 세계가 조금이라도 어린이 여러분께 전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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