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왜 저렇게 되어버렸는가?”, “ KBS 노조가 왜 저 모양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얻으려면, 그래서 ‘KBS 문제’의 근원에 다가서려면, 2008년으로 되돌아가 당시의 정치상황과 관련하여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특히 나의 강제 해임에 이르기까지 한나라당, 수구언론, KBS 노동조합(옛 노조) 등 삼각편대의 대공세, 그리고 이와 더불어 검찰, 감사원, 국세청, 교육부, 방송통신위원회, KBS 이사회 등 여러 권력기관들의 해임 작전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론이 바르지 못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의 토양은 불가능하다. 거짓과 증오를 확대 재생산하는 언론이 지배하는 사회는 그래서 참으로 불행하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 사회의 시민적 자유의 공간은 크게 넓어졌다. 그 넓어진 자유의 공간에 언론은 무임승차를 하여 언론자유를 만끽했으며, 그 과정에서 거대자본을 가진 족벌신문들은 자전거, 상품권 등으로 거의 무한의 판매 경쟁을 벌이면서 부수를 확대하여 거대권력이 되었다. 그 거대권력은 기득권이라는 자기 영토를 지키기 위해 별짓을 다 하는 조폭적 행태도 서슴지 않았으며, 그들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은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매장해버리는‘흉기’가 되어버렸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이 사회적 흉기의 잔혹함을 알 수가 없다.
‘위에서 내려온 논리’가 무엇이었을까? 정연주를 해임하기 위해 감사원 특별감사가 필요하고, 그 특별감사를 하기 위해 ‘부실경영’ 등의 이유를 들어 감사 실시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 아니었겠는가. 그렇다면 그런 논리를 지시한, ‘ 위’라고 지칭된 그 빅 브라더는 누구인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방송 장악을 지휘한 세력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감사원, 검찰,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등 권력기관, 심지어 KBS 이사회와 교육과학기술부, 대학까지 모두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베이징 올림픽 전에 나를 해임해야 한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얼마나 서둘렀던지 감사위원들은 기본 사실도, 감사 결과의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사장 해임 요구’를 의결했다. 그날 회의록 전문이 공개된다면 아마 더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권력기관들은 나의 해임을 위해 총동원됐을 뿐 아니라 해임 직후 ‘KBS 관리체제’를 위해서도 음습한 ‘비밀회동’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두 번의 ‘비밀회동’은 ‘KBS 관리체제’를 위한 정권 차원의 개입과 작전이 추진되었음을 보여준다. 군부독재 시절 ‘관계기관 대책회의’ 같은 구시대적 공작정치의 냄새까지 묻어난다. 알려진 것만 두 번일 뿐이지, 일반 국민이 모르는 ‘관계기관 대책회의’ 성격의 ‘비밀회동’은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수구언론이 신문뿐 아니라 방송까지 장악하게 되면 콘텐츠와 방송시장이 황폐해지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론의 다양성이 수구언론으로 쏠리면서 말살되고, 결국 민주주의의 토양이 황폐해져버린다.‘ 조·중·동 방송’의 가장 심대한 폐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이 문제를 정권 차원에만 맡겨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정권이 바뀌어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 관료들의 보신주의로는 어림도 없다. 결국 깨어 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이 두 눈을 부릅뜨고, ‘조·중·동 방송’의 탈법·위법 행위와 불공정거래, 약탈적 광고 영업 행위 등을 빠짐없이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그 자료들을 모아서 방송 재허가 때 이를 근거로 재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등 시민적 참여를 통해 관료사회와 정치권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 그렇게 시민의 힘이 모일 때, 그 시민의 힘으로 방송과 여론을 황폐화시키는 수구언론, 수구방송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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