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무언가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과시하지 않는 것 같아 ‘참 겸손한 사람이구나’ 존경심을 품었고 결국 사랑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남자의 실체를 알고 말았다. 그는 겸손해서 과묵했던 것이 아니라 워낙 아는 것이 별로 없어 과묵했다는 것을. ---「그가 과묵했던 이유」중에서
남편과의 만남을 운명이라기보다는 우연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운명이란 말은 뭔가 비장미가 느껴지지만 우연이라는 말은 경쾌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운명적인 만남이라면 어떻게 감히 지지고 볶고 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감히 아이고, 열두 번도 더 이혼하고 싶다는 푸념을 내뱉을 수 있었겠는가. ---「운명과 우연 사이」중에서
하루 종일 시끄럽게 내 주위를 맴돌던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남편은 여전히 귀가하지 않은 자정 무렵이면 사라진 줄 알았던 외로움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그때도 외로움의 근원을 남편의 부재에서 찾았지만 나는 이미 그것이 핑계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결혼해도 외롭다」 중에서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라는 말이 불에 기름으로 작용할 때는 또 얼마나 많은가. ‘아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해?’라는 힐난을 당하면 ‘잘못했다는데 웬 꼬투리냐’로 이어지는 끝없는 말싸움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사이가 좋을 때 미리 약속을 해 두면 어떨까. 누구라도 먼저 화해를 위한 ‘작은 표현’을 할 경우 상대는 무조건 받아들일 것을. ---「먼저 화해하기엔 자존심 상한다고?」중에서
“왜 길어진 인생을 한 남자와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거야? 국회에서 결혼 정년제를 만들어야 해.” 만약 누구의 눈치도 살필 필요 없이 그야말로 깔끔하게 인생을 재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법으로 보장되는 정년제가 있다면 우리네 결혼이 좀 더 알차고 뜨겁고 재미있게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