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 사랑하고 사랑받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은 우리가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우리가 탐구해야 할 학문이며, 배우고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공부이다.
나이 먹는 건 저절로 되지만 아름답게 나이 드는 건 배워야 하듯이 사랑의 열정은 저절로 생기지만 아름답게 사랑하는 법은 배워야 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타인의 삶, 그들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가 사랑과 인생을 연습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것이 우리가 더 많은 사랑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프롤로그, 아무도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중에서
영혼의 여명기에 천둥 비바람처럼 찾아온 첫사랑. 아침 이슬처럼 순식간에 사라진 허무. 때로는 환희로, 때로는 죽음 같은 슬픔으로 우리 영혼을 두드리던 북소리. 그러나 그 사랑은 빛과 어둠의 망토로 우리를 감싸 안고 묵묵히 강의 이편에서 저편으로 노를 젓는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첫사랑이라는 배를 타고 어른의 나라로 들어왔다. -내 안의 사랑을 깨워준 사람,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의《첫사랑》중에서
열다섯 살 반의 소녀는 검정 리무진을 타는 순간 알았다. 이 남자가 자신의 첫 남자가 될 것이며, 이제 자신은 영원히 예전의 그 아이로부터 멀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그날은 매우 빨리 왔다. 남자는 소녀의 기숙사로 와서 학교에 데려가고, 수업이 끝나면 기숙사로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은 그의 독신자 아파트로 데리고 갔다. 소녀가 남자에게 말했다.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더 좋을 거예요.” “그게 당신이 바라는 거요?” “당신이 독신자 아파트에 데려오는 다른 여자들에게 하듯 저에게 하시면 돼요.” 소녀의 말에 그는 울었고, 소녀의 출혈을 보자 또 울었다. 서른두 살의 남자는 열다섯 살의 소녀를 사랑한 것이다.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연인》중에서
사랑을 하면 달랑 몸만 오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민족과 지역과 기후가 따라오고 정체성이 따라온다. 그들은 정체성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 둘이는 첫눈에 반했지만 도파민이 사라진 후에 보니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두 개의 선이 교차점에서 짧게 만났을 뿐이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동안 합치되었던 것은 넓고 갈림길이 많은 복잡한 길 위에서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누군들 찌질한 사랑을 하고 싶으랴, 알랭 드 보통의《우리는 사랑일까》중에서
외로움은 고통스럽지만, 고독은 평화롭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하지만, 고독은 홀로 서서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고독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 홀로 서지 못하는 사람은 기초가 부실한 건물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고독을 다스리는 어떤 문법도 배운 적이 없다.
삶이란 의미를 찾는 순간에만 의미를 갖는다. 그러지 않은 순간에는 있던 의미마저 사라진다.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면 삶은 한없이 천박해질 준비를 한다. 세월이 지나면 살던 집은 허물어지고, 아이들은 자라서 떠나고, 부부는 죽고 이야기만 남는다. 우리의 사랑과 결혼은 어떤 이야기로 남을 것인가. -사랑은 홀로 선 둘이 만나는 것, 제임스 설터의《가벼운 나날》중에서
사랑도 배워야한다. 우리 문화는 사랑을 환상이나 신화로 떠받들면서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달콤한 사랑을 꿈꾸다가 쓴 맛을 보고 놀라서 돌아선다. 지금 현대인들은 너도 나도 사랑 불능자가 되어간다. 사랑을 태어나게 하는 샘이 말라버려 단체로 불행의 늪에 빠져버렸다.
결국 사랑이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너를 통하여 나를 알아가는 과정. 너와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까맣게 모르고 살았을 나의 오만과 편견, 네가 아니었으면 영원히 몰랐을 깨진 그릇같이 날카로운 질투와 분노. 너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발현되지 않았을 나의 허영심. 너는 나의 거울. 그러므로 사랑은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서정주의 ‘누님의 거울’이다. 이런 자기 발견은 십중팔구 결핍의 발견이고, 이 결핍은 상처가 된다. 그러나 상처의 발견은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성장시킨다. 성장의 에너지는 자기의 결핍을 발견할 때부터 타오르기 시작한다.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잘났으며 흠도 티도 없는 완전무결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성장의 에너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