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으로 우리의 삶에서 너무도 자주 인용되고 있는 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은(실제로 "온고이지신"은 한국어화되어있다), 그 말이 사용되고 있는 맥락을 살펴보면, 대체로 신(新)보다는 고(故)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옛 것에 대한 존중,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전통에 대한 깊은 존숭을 말할 때 꼭 이 말이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歷史)를 온습(溫習)함으로써 역사로부터 현실에 대한 새로운 지혜를 발견하라는 맥락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 "온고이지신"이라는 말은 대체적으로 유교의 복고주의에 대한 완곡한 정당화의 수단으로서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해석이야말로 공자라는 한 인간이 추구해온 삶과 비전을 배반하는 어리석음의 소치라고 생각한다. 공자의 삶의 강조점은 항상 옛(故)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새로움(新)에 있었던 것이다.
온(溫)이라는 글자는 삼수변이 없는 모습과 상통하는데, 그 글자를 잘 살펴보면 그릇이 위에 있고 그 밑에 화기가 올라오는 모습이다. 이것이 그릇에 있는 것을 끓이는 모습일 수도 있고, 또 술독과 같이 무엇을 온양시키는 모습일 수도 있다. 즉 발효를 의미한다. 우리 된장국이나 꼬치장국의 특징은, 모든 자료가 한군데 들어가 끓여짐으로써 어떤 새로운 성질이나 맛이 발효된다는데 있다. 발효라는 것도 옛 것으로부터 다른 성질이 발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에 있어서 온고(溫故)의 목적은 지신(知新에 있을 뿐이다. 신(新)을 위하여 고(故)는 온(溫)되었을 뿐이다. 고(故)는 고(故)일 뿐이다. 고(故)가 고(故)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신(新)으로 참여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신(新)을 떠난 고(故)는 존재하지 않는다.
---pp.139~140
우리 동양인의 교육방법으로 가장 잘 쓰는 말이 '솔선수범'이라는 말이다. 남에게 말로써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써 모범을 보인다는 말이다. 'Teaching by Example' 이것은 만고를 통하여 양보할 수 없는 보편적 진리인 것이다. 오늘 우리사회가 혼란과 무기력증세를 보이는 것도 바로 우리사회의 리더들이, 말만을 앞세울 뿐, 후학들이 진심으로 따를 수 있는 행동의 모범을 보이고 있질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 p.159-160
『논어』는 유교의 최대의 이단서일 수도 있다. 『논어』야말로 성인공자의 최대의 걸림돌일 수 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논어』가 유교의 이단이라 함은, 유교를 국가종교(statereligion)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 유교를 절대적인 권위체계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논어』의 정직하고 비권위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은 이단으로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논어』가 성인 공자의 걸림돌이라 함은, 공자를 성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논어』속의 너무도 인간적이고 변화무쌍한 희노애락의 공자상은 성인화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논어』에 있어서 처럼 인간 공자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펼쳐진 문헌은 그 유례가 없다.『논어』는 인류문명사의 한 축복이다.
--- p.48-49
『논어』는 유교의 최대의 이단서일 수도 있다. 『논어』야말로 성인공자의 최대의 걸림돌일 수 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논어』가 유교의 이단이라 함은, 유교를 국가종교(statereligion)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 유교를 절대적인 권위체계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논어』의 정직하고 비권위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은 이단으로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논어』가 성인 공자의 걸림돌이라 함은, 공자를 성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논어』속의 너무도 인간적이고 변화무쌍한 희노애락의 공자상은 성인화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논어』에 있어서 처럼 인간 공자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펼쳐진 문헌은 그 유례가 없다.『논어』는 인류문명사의 한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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