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은 가장 단단하고 견고해서 번뇌, 망상, 고통, 업 등 모든 경계를 깨뜨릴 수 있지만, 스스로는 부서지지 않는 영원함 그 자체를 형용합니다. 그런데 사실 아무리 단단한 것도 시간과 공간 속에 놓이면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가장 단단하고 견고하며 영원불멸인 것은 공n입니다. 금강이 공이요, 공이 금강입니다. 이 위대한 금강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들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금강은 마음 나기 이전의 고요한 그 자리, 허공같이 텅 비어 고요한 자기 마음의 본체입니다. 반야는 무엇입니까? 마음을 고요히 하는 가운데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밝게 비추어지는 자기 마음의 당체입니다. 출렁이는 물결이 잔잔해지면 만상이 다 드러나고 비추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비 갠 호수와 같이 맑은 마음이 일체에 물들지 않고 구름이 흘러가면 흐르는 구름이 비추어지고, 달이 뜨면 달이 비추어지고, 푸른 하늘은 푸른 하늘대로 먹구름은 먹구름대로 여실하게 비추어지는 것이 반야입니다. 바라밀은 이 생사의 언덕에서 저 절대의 언덕으로 건넌다는 것입니다. 바라밀은 반야의 광명이 비추어지는 대로 모든 존재가 밝게 작용하여 세상의 주인이 되니 자기 아님이 없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자재한 마음의 작용입니다. --- pp.15-16
시간은 수평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고 수직으로 존재한다. 찰나의 한 생각에 과거·미래·현재가 다 있기 때문에 수직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찰나에 결정할 권한이 다 있다. 만 가지 결정권이 다 자기에게 있다. 이것이 시간이다. 그래서 전생의 업보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찰나의 닥치는 경계 속에 과거가 있고 전생이 있다. ‘지금 이 순간 이 찰나’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지금 순간순간 드러나는 모든 경계가 자기의 전생이다. 이 전생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그것도 자기의 한 생각이다. 자기가 점을 찍은 한 생각,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진정한 시간의 실체이다. --- p.35
상대적인 대상이 있고 구하는 마음이 있고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망념이라 하고, 없다는 소견에 떨어져 있으면 이것 또한 망념이 된다. 양 변을 벗어난 중도의 바른 안목은 당당하고 틈이 없이 항상 눈앞에 분명하게 나투는 것이다. 마치 하나의 달이 모든 물에 널리 비추어 온갖 그릇에 나투는 것과 같다. 모양이 있고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허망한 것이라 하고, 모양이 없고 견해가 없으면 치우친 소견에 떨어진다고 하니 그럼 어떻게 하라는 소리인가? 상이 있어도 틀렸다고 하고 상이 없어도 틀렸다고 하여 어느 곳에 서 있을 곳이 없게 해 놓고는 ‘당당하고 밀밀하다’라고 한다. 수행자는 서 있을 곳이 없는 그 곳이 참으로 바르게 서 있을 곳이라는 것을 알면 어느 곳이든지 다 옳아 자유자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