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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신고 벗을 때마다

신을 신고 벗을 때마다

이진화 | 명상 | 2001년 07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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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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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1년 07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70쪽 | 42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2322115
ISBN10 897232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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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진화
서울에서 태어나서 이화 여자 중고등 학교와 이화 여자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연세 대학교 연합 신학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하고 있다. 1986년 한국 수필에 초회 추천, 1988년에 추천 완료되어 문단에 나왔다. 한국 수필 작가회 동인으로 활동을 하고 있고 한국 문인 협회와 한국 수필가 협회 회원이다. 1993년 이후로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면서 고양 문인 협회에 몸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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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남짓한 곳에 있는 바탕가스 항구에서 민도로 섬으로 향할 때는 제법 큰 여객선을 탔다. 스쳐 가는 작은 섬마다 야자수가 가득하고 적도에 가까워질수록 바다는 깊푸른 빛을 띠었다. 하얀 대리석 벼랑이 둘린 섬, 부서진 조개 껍질로 이루어진 한적한 해변, 검은 바위에 파도가 파 놓은 동굴이 입 벌려 노래하는 미지의 해안, 그 모든 풍경이 가슴에 그대로 담겨 있다.

민도로의 한 쪽에 유나힌 하얗게 빛나는 해변이 있다. 사람들은 그곳을 '화이트 비치'라 부른다. 큰 배는 닿지 않아 선착자에서 다시 작은 배를 갈아타고 가야만 하는데 하얀 해변을 따라 소박한 여인숙들이 늘어서 있었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풍경은 더위와 사람에 지친 도시인들을 너그럽게 싸안았다. 세계의 이름난 피서지를 마다하고 그곳에 온 사람들은 며칠간 자연과 벗하며 마음을 새롭게 하려는 이들이었다. 대학생 때 한 번 다니러 왔다가 아주 눌러앉아 이태리 식당을 하는 사람도 있고, 멀리 독일에서 찾아와 장기 체류하는 가족도 있었다.

별이 우수수 쏟아져 내릴 듯한 맑은 밤하늘, 비 갠 뒤 하늘 가득 걸린 무지개다리, 맨발에 와 닿는 흰 모래의 감촉, 성긴 통나무 천장에서 끼룩대는 작은 도마뱀의 울음 소리와 파도 소리가 화음을 이루는 외딴 섬에서 이틀을 보냈다.

하루 더 머무르려던 계획이 돌연 취소된 것은 태풍이 올 것이라는 예고와 심상찮게 불어 대는 바람 때문이었다. 평화로운 낙원이 유배지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일정을 단축하고 배 편을 알아보았으나 작은 동력선밖에는 없었다. 고작 열 명만이 탈 수 있는데 작은 배는 양옆에 대나무 썰매 날 같은 것이 달려 있어서 그것으로 배의 균형을 잡는다고 했다. 아버지와 어린 두 아들, 이제 막 소년 타를 벗은 조카 아이가 그 배의 선원이었고, 그들의 향해 장비는 낡은 회중 전등뿐이었다.
--- pp.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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