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가이며 아시리아 학자로 1958년부터 국립 고등연구학교에서 아시리아학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52~1953년 마리의 발굴에 참여했으며, 3번에 걸쳐 이루어졌던 우루크, 와르카의 발굴에도 참여했다. 1955년부터는 고대 근동 아시아의 전문가이자 고고학자인 마리-조세프 스테브 신부와 함께 많은 작업을 했다.
쿠쉬가 님루드를 낳았다 님루드는 세상에서 절대권력을 가졌던 최초의 인물이며,야훼앞에 섰던 유명한 사냥꾼이니! 먼저 그는 바빌론,우루크,아가데즈등 수메르의 모든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왕국을 건설했다 그후 아시리아로 진출하여 칼라흐뿐 아니라,모든 도시 가운데 가장 거대한 도시인 니네베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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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베일에 가려 있던 세 가지 문자와 이어서 등장한 네 가지 언어는 2000년이나 3000년, 혹은 4000년 전에 이미 사라져버린 것으로 어느 누구도 그 존재를 상상하지 못했다. 오로지 지성과 사유, 재치에 기대어 이 문자와 언어를 재발견하는 작업은 기나긴 방랑의 길이었다. 그리고 이제 최후의 난제에 이르른 것이다.
튀로-당쟁은 수메르어의 존재와 그 활용법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는 수메르어를 체계적으로 확립하는 작업, 즉 문법을 설정하는 작업은 시도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는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그것은 우선 수메르어는 엘람어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알려진 어느 언어와도 유사점이 없는 고립 언어여서 이 언어만의 독특한 구성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기존의 언어학적인 지식이 도움이 되지 못했고, 또 설형문자로 표기된 기호의 음가는 문맥 속에서 정확히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문법적인 뉘앙스를 거의 알아낼 수 없는 난점이 있었다. 설형문자로는 한 음절의 음가를 알 수 있을 뿐이며, 음절 이상의 언어요소들이 형태론적으로 어떻게 분절되어 있는가를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 아시리아 학자 아르노 포게벨이 1923년《수메르어 문법의 기초》라는 저서에서 수메르어의 언어학적 복잡성을 완벽하게 도식화함으로써, 그 이후로는 메소포타미아의 모든 설형문자 문서들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 장애물이 완전히 해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