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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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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

이주성 | 책밭 | 2015년 10월 1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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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446쪽 | 638g | 153*224*30mm
ISBN13 9791185720135
ISBN10 118572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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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열차 지붕 위에 올라 아래에서 선희가 올려 보내는 짐들을 노끈으로 묶어 끌어올렸다. 열차 안 공기를 뽑아 올리는 기둥처럼 박힌 둥그런 관 형식의 환풍기 통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이유가 있었다. 밤에 열차가 달릴 때 혹시 저도 모르는 잠결에 몸을 움직여 열차 지붕 위에서 떨어질 것을 생각해서였다. 환풍기 통에 두터운 끈
으로 나와 선희, 짐을 함께 연결해 묶어 놓았다. ‘설사 잠든다 해도 떨어져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떠날 때 어깨 위에서 발까지 닿는 사각형 모양의 비닐박막을 비옷처럼 온몸을 뒤집어쓰고 앉았다. 그래야만 달리는 열차 밤바람에 체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p.60

나는 멀쩡한 발을 곡괭이 날로 내리찍어 상처를 내어 절뚝거리며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는 것으로 탈출 작전을 시작했다. 다음 번 상처를 낼 대상은 손이었다. 오른손을 벽돌 위에 올려놓았다. 입에는 타월수건이 물려 있었다. 준비를 끝내고 왼손으로 벽돌을 들어 몇 번 힘껏 내리쳤다. 손가락 잔뼈가 우개 졌다. 언젠가는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려 일부러 상처를 내고는 치료 핑계로 갱 막장에 들어가길 거부했다. 솜털
이 뽀시시 애티를 벗지 못했던 10대의 어린 청년은 피를 뿌리고 뼈를 바수는 따위의 모험을 택했다.
--- p.136

흥분이 절정에 달한 청년의 욕구를 채우는 일은 나에게 두 다리가 찢겨 나가는 아픔이었다. 그 고통은 굶주린 야수의 송곳니에 물린 여인이 체험할 수 있는 숙명적인 운명이기도 했다.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 하다’고 한다. 정권이 있고 나라가 있는 북조선 여성들은 중국 남자들에게 개가 아닌 벌레보다 못한 쓰레기 취급을 받아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노예로 순종해야 하는 현실이 기가 막혔다. 북조선
에서 태어난 죄로 당해야 하는 치욕의 서러움이 눈물로 변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 p.275

나는 석 달 가까이 되자 하반신의 신경 감각이 완전히 마비되어 실신 상태에 빠졌다.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헛소리를 치는 등 정상이 아님을 직감한 콧수염은 당분간 남자들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한 것은 놈들이 나를 걱정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죽거나 잘못되면 돈벌이 기계가 없어지니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콧수염네 가족에게 있어 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콧수염들에게 성 노리개 몸종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나는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하늘 같은 존재가 되었다. 놈들은 나를 희생양으로 벌어들인 돈을 나누어 가지는 문제를 가지고 싸움이 붙었다. 집안의 돈을 모아 맏자식인 콧수염을 장가보낸다며 데려왔던 북조선 여성 ‘리선희’는 한족 동네의 네 것, 내 것 따로 없는 공동 변기가 되어 버렸다.
--- p.320~321

나는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생각과 마음, 하나하나를 사랑과 정으로 담아 오빠에게 부어주었다. 날이 밝고 밤이 새도록 한 몸이 되었다가는 지치면 눈물의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잠시 쉬고 다시 한 몸이 되기를 반복했다. 할 수만 있다면 오빠의 한 부분이 아닌 오빠를 내 몸속에 넣고 싶었다. 나는 오빠의 품에 안겨 수많은 영혼의 조각상들을 온 넋과 힘을 모아 그려 보고 만들어 냈다. 가슴속에 진주 보석처럼 자리 잡은 그 소중한 추억들을 미련의 갈피마다 흔적으로 자국자국 남기며 우리는 2박 3일을 그렇게 보냈다. 너무도 고맙고 잊지 못할 오빠와 운명을 함께하고 싶었던 나는 마음의 꿈을 접어야 했다.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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