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작가들이 작금의 시대를 지옥으로 묘사하곤 한다. 재난, 전쟁, 테러, 가난……, 이런 것들이 그 지옥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런 세계는 어떤가? 주말, 출근, 산책, 주말, 출근, 산책, (가끔 술), 주말, 출근, 산책……. 이 소설 속에 다른 것은 없다. 빨래를 하거나 하지 않는 주말, 그리고 똑같은 출근과 점심과 퇴근, 약간 다른 안주에 마시는 몇잔의 술, 매일 보는 동료들과의 무의미한 대화, 그러면 다시 빨래를 하거나 하지 못하는 주말, 출근, 퇴근, 술, 산책, 다시 주말……. 이것이 이 소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전체다. 재앙이나 재난마저도 일어나지 않는 세계, ‘애증?복수?권태?폭력?불합리’마저도 감지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세계, 기억하거나 의미화할 만한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가치’ 그 자체인 세계……. 말하자면 김엄지식 지옥이다. 전혀 차이나지 않는 반복, 그 악무한의 무의미 속을 발목 잘린 비둘기처럼 견디며, 실은 견딘다는 의식마저도 없는 채로 살아가는 ‘인간-동물’들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왜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되묻고 싶다. 남의 이야기 같으십니까?
김형중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