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대전교구 사제로 서품되어 유천동, 조치원, 홍성 성당 보좌를 거쳐 2002년 교구 사회사목국 차장으로 부임했다. 2005년부터는 장애인사목 전담 신부로 지냈고, 2007년에는 대덕구장애인종합복지관장을 겸직했다. 2011년 진잠 성당 주임을 거쳐 2014년부터 교구 사회사목국장으로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 더 따뜻해지고 더 많이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썼다.rn
신학생 때 ‘봉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누가, 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 누군가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고, 봉균이라는 실제 이름은 교실에서나 불릴 정도로 그냥 봉달이로 통했다. 까만 피부색 때문에 호號까지 붙었다. 그래서 그냥 봉달이가 아니라 ‘까만 봉달이’다. --- p.8-9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과 타인의 부족함을 같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 부족함을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부족한 사람이다. “주님! 저로 하여금 완전을 지향하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알게 하소서!” --- p.36
세상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최고가 되려고 한다. 전부 일등이 되려고 한다. 세상이 일 중심으로 가는 것도 그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사람 중심이어야 한다. 사제는 사람 중심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일의 성패가 아니라 사랑이다.--- p.4
나무도 사람도 때가 되면 붙들고 있던 것들을 놓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유로워지고 홀가분해질 수 있다. 언젠가 우리는 생명과도 이별해야 하는 존재다. 죽어야 하는 것이다. 멋지게 죽고 기쁘게 죽으려면 미리미리 훈련해야 하지 않겠나!--- p.47
때로는 눈물도 참아야 하고, 분노도 다스릴 줄 알아야 하며, 3초 정도의 기다림도 느긋하게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배려이고 사랑이다. 아무리 인생이 고단해도 박달나무처럼 마음이 단단해져서는 안 된다.--- p.158
나는 신자들에게도 가급적 웃음을 주고 싶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대부분의 신자들은 재미있지 않아도 잘 웃는다. 그런데 잘 웃지 않는 분들도 있다. 무표정이 습관이 되어 버린 분, 걱정이 많아 웃지 못하는 분도 계신 것 같다. 무표정은 버리고 걱정은 주님께 맡기자. 주님은 웃는 사람을 좋아하신다.--- p.182
꼭 말을 해야만 들리는 것은 아니다.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어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꼭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다.--- p.198
구원救援은 먼 데 있지 않다. 약한 사람을 배려하는 것, 그 안에 작은 구원이 있다.--- p.205
꿈, 희망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이에 관계없이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한다. 희망해야 한다. 참고로, 남에게 예수님 되어주는 것을 자기의 꿈으로 삼은 사람은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다.--- p.232
자기 혼자만 정의로운 사람인 양 따지기 좋아하고, 옳고 그름을 지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피로감에 시달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사람들을 통해 세상이 더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봉사를 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관점이 조금 다를 뿐이지 뭐가 그렇게 옳고 뭐가 그렇게 그르다는 말인가! 이 세상 삶을 마치고 주님을 만났을 때 그분께서는 무엇으로 셈을 하실까? 사실 주님께 드릴 선물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분이 좋아하시는 선물은 사랑이다. 정의만 강조하다가 자칫 사랑을 놓칠 수 있다.--- p.242
코가 아니라 가슴으로만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있다. 바로 사람 냄새다. 누군가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이고 싶다고. 따뜻한 사람,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런 신부이고 싶다.